‘검정새치’라는 단어가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모순된 말이다. 새치란 하얀 색이니
검은색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말은 잘못된 말일까? 뜻을 살펴보면 모순이 아니라 고도의 역설이자 은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뜻은 무엇인가? ‘같은 편인 체하면서 남의 염탐꾼 노릇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고드름장아찌’는 어떨까? 뜻만 보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아찌야 간장에 절은 반찬인 만큼 짭짤해야 한다. 그런데 고드름이 붙는다면? 싱거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뜻이 재밌다. 언행이 싱거운 사람을 ‘농’으로 일컫는 말로 맹물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
검정새치와 고드름장아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의미 불분명한 단어가 아니라 곱씹어볼수록 단어의 품새가 일품인 우리말인데 2년 전에 나온 박남일의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는 이런 단어들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수두룩하다.
책이 담은 글자는
1700여개. 그중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600여개는 뜻과 어원을 자세히 풀어썼고 나머지 1100여개는 쉽고 간결하게 다듬어 소개하고
있다. 때문에 어렵지 않게 우리말을 알아볼 수 있다는 강점이다. 책의 구성도 눈에 띈다. ‘가나다식’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 ‘생물과
사물’, ‘사람과 사회’, ‘경제활동’, ‘일상생활과 문화’ 등 주제별로 구분했기에 단어들을 어울려가며 살펴볼 수 있다. 책의 외모부터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책의 알짜는 단지 우리말을 주제에 따라 쉽게 알려줬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본 역할에도 충실했지만
그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건 단어를 풀이하면서 그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짚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단어의 뜻만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생각까지 엿보게 해주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대표적으로 몇 개의 단어를 살펴보자.
‘깍짓동’이라는 단어가 있다. 무슨 뜻일까? 깍짓동이란 “본래 마른 콩깍지가 붙은 콩나무 줄기를 많이 모아 크게 묶은 단”을 의미한다. 뚱뚱한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인데 요즘 속된 말로 쓰는 ‘드럼통’과 비슷한 의미인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뚱뚱한 여자를 물건에 비유해서 말하는 건
똑같았던 모양이다.
‘불땔꾼’이라는 단어에 대한 풀이도 흥미롭다. 불을 땐다는 것을 어떤 일에 대한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은 ‘화’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심사가 비뚤어져 하는 짓이 남에게 화를 입히는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단어를 곱씹어 볼수록 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이들의 순박한 마음씨가 느껴진다.
술의 의미하는 ''도깨비뜨물''은 어떨까?
술을 먹으면 무슨 일인지 세상이 오락가락하게 보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옛날 사람들은 이를 도깨비와 연관 지어 생각한 것. 재밌는
것은 도깨비라는 단어에 얽힌 것이다. 도깨비에 홀리면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것은 민간에 익히 알려진 사실. 그러니 술을 의미하는 말에
도깨비라는 단어는 정신을 오락가락하게 만든다는 의미와 함께 조심하라는 일종의 경계의 뜻까지 담고 있다. 재치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천둥지기’와 같은 단어들의 풀이는 흥미보다는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이유인즉 그 시절의 고달픈 심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농사짓기 좋은 땅들은 대지주가 독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가난한 농부들은 물길이 닿지 않은 산골짜기 같은 곳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러니 비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한마디로 천둥치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이다. 짧은 글자로 그 시절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단어라 할 수 있다.
말은 행동양식부터 그것에 대한 심리까지 참으로 많은 것을 엿보게 해주는 단서다. 그런 만큼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옛 시절을 마주보게 해주는 보고인 셈이다. 물론 아름다운 우리말까지
알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가치가 있다. 남의 나라 말 배우는 것이 재산이라고 하는 세상이라지만 이럴 때일수록 틈틈이 이런 보물섬을 탐험하는
건 어떨까? 더욱이 한글날에만 ''유독'' 관심 갖을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렇다면, 넉넉한 마음의 양식을 곳간 가득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리더스가이드 정군 님 리뷰 (원문 페이지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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