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거덕~

[스크랩] 우리딸 울린 공짜 자전거 100대

봄돌73 2006. 10. 31. 09:59
어제는 2년 만에 열리는 면민의 날이었습니다
이 시골에서 면민의 날 행사는 조촐하지만 나름으로 의미있는 행사이지요
마침 시에서 자전거 100대를 경품으로 내놓아
모처럼 행사장소인 면 내 중학교 운동장이 장날처럼 시끌벅적하였습니다
동네 별 축구 대회며 달리기며 줄다리기까지 뜨겁게 우열을 가리며 놀다가
드디어 온 면민이 바라고 고대하던 자전거 경품 추첨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딸은 그 자전거 때문에 하루 종일 운동장을 서성거렸습니다
아직까지도 땅꼬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우리 딸아이는 이제
덩치가 제법 커서 어른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한 대가 소원이었는데
자전거가 경품으로 나온다니, 그것도 100씩이나 나온다니 잘하면 이번 기회에
자기 자전거 한 대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따라나선 것이지요

하지만 자전거가 30대 이상 빠져 나갈 동안 자기가 갖고 있는 번호가 불려지지 않자
조금씩 실망하는 기색이 돌더니 50대 이상 빠져나가니 함께 기운도 빠져 보였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은 자전거가 제법이라 계속 기대를 가지고 버티더군요
그런데 80대 이상 빠져나가니 아이 입에서 한숨이 터져나오고
90대가 나가도록 자기 번호를 비껴가자 거의 울상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워낙 성격이 낙천적인 아이라 나머지 남은 10대에도 기대를 걸고 있으려는데
이미 시간이 밤 9시가 다되어 운동장이 너무 춥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나머지 추첨은 생략하고 곧바로 불꽃놀이 행사를 한다고 경품추첨행사를 접더군요

그러자 그제까지 희망을 잔뜩 품고 있던 딸아이가 그래도 자전거가 남아있는데
왜 추첨을 계속하지 않느냐고 아빠에게 묻더니 너무 자기 감정에 북받쳐 울어버리더군요

사실 그때까지 운동장에 자전거를 타려고 기다리던 아이는 우리 딸아이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는 딸아이를 달래면서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고(쯧3님은 아니고 ^^),
공짜라고 하면 양잿물도 마실거냐며, 나중에 돈벌어서 멋진 자전거 사면 된다고
얼르고 달래며 멋진 불꽃놀이도 보는둥 마는둥 서둘러 돌아왔지요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도 아직 남아있는 자전거 10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공짜를 바라는 마음이 사람을 병들게 할 수도 있음을 강조하면서
나중에 우리 딸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돈 많이 벌어서 이런 면민의 날 행사에
자전거 100대, 200대 기증하는 사람이 되면 더 좋겠다고 기를 돋워주면서
옆에 있는 아들에게는 까짓거 자전거 100대 보다 자가용 100가 낫겠다고,
"아들, 너는 나중에 보란듯이 면민의 날에 자가용 100 쯤 기증해라" 라고 했더니
"어휴~ 아빠도 참, 아들을 뭘로 보고 그러세요? 아빠 아들이 그렇게 째째하면 좋겠어요?
적어도 비행기 100대 정도는 기증해야지요, 험험험"해서 온가족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웃음으로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었지만 마음으로는 찜찜하였습니다

그 찜찜함은 바로 추첨을 담당한 면우체국장의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딸아이가 그가 한 행동을 눈여겨 보았더라면 상처가 더 컸을 겁니다
우체국장은 번호표를 골라서 슥 보고는 자기가 아는 이름이면 얼른 그 번호를 불러서는
무슨 선심쓰듯이 자전거를 내주면서 악수도 하고 끌어안아도 주면서 허세를 떨다가
자기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적힌 번호표가 나오면 슬그머니 그 번호표를 치우고
다시 통에서 새 번호표를 주어올리는 행동을 추첨 내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행동을 지켜보면서 애들아빠는 속으로 혀를 찼지요
당장이라도 단상에 올라가서 그런 유치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 보는 앞이라 어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까봐 꾹꾹 참았답니다
하지만 나중에 우체국장을 만나러 가서 인생 그렇게 쪼잔하게 살지말라고 해주겠답니다

우리집 앞집 아들이 면사무소 직원인데 오늘 부모집을 방문했더군요
아, 그런데 차에서 번쩍이는 것을 내리길래 쳐다봤더니 바로
어제 경품으로 내놓은 자전거 중 한 대가 아니겠습니까?
이미 사전에 자전거 10대 정도는 면 사람들끼리 나눠갖기로 약속을 한 것인지
어제 추첨에는 안나타났던 그집 아들이 자전거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 그집에 차가 없으면 그래도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집에 그런 자전거를 타고 다닐 만한 젊은이나 아이들이 있다면 또 말이 되지요
그냥 공짜니까 대충 아는 사람들끼리 하나씩 나눠갖자는 간단한 논리로 남겨둔 자전거가
우리 딸아이를 울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니 괜히 부아가 더 치밀더군요
진작 그럴량이면 아예 처음부터 10대 정도는 전시를 하지 말던가...

부정적인 추첨 과정도 참았는데 그까짓거 참지 못하겠습니까만 그런저런 작은 행위들이
어린 아이 마음 하나라도 다치게 한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자전거 안받고 돌아온 사실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지더군요

사실 생각하면 아무일도 아닐 수 있는 작은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게 꼭 그렇지는 않지요
우리는 흔히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하지만 저는 자기 행동을 사사로이 하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작은 부정이 결국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커다란 부정의 단초가 된다고 보는 게 지나친 걸까요?
출처 : 사회방
글쓴이 : hee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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