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동네북이 된 내력은 이렇다.
교사는 거의 모든 국민과 관련된 직업이다. 누구나 학교에 가면 교사를 만나 생활하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은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얽히다보니 자연히 교사에 대해 말이 많게 된다. 이제 임금과 아버지의 권위도 추락한 마당에 교사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몇 가지 측면에서 오늘날 교사가 자주 도마에 오르는 까닭을 살펴보겠다. 1. 학생이 교사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까닭. 교사는 학생이 최초로 접하는 직업인이다. 그들은 교육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흔히 상처를 준다. 교사가 학생 위에 군림하는 식민지 교육시스템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은 교사의 부당한 대우에도 정면에서 반발할 수 없다. 이 때는 게릴라전이 유효하다. 이래서 학생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광장에서 교사나 부조리한 교육을 비판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교사가 아니므로 교사를 별로 존경하지 않는다. 요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사 이름만 불러주어도 존경하는 경우에 속한다고 한다. 교사는 대개 내향적인 성격을 지녔는데 자신과 닮은 학생, 성적이 우수한 학생, 말 잘 듣는 학생을 편애하는 경우가 많다. 교칙도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사례가 있고, 학생 신체의 일부인 머리도 자기 마음대로 자를 정도로 학생에 대해 비인격적인 대우를 일삼기도 한다. 이러니 학생의 불만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한다. 교사들은 흔히 선배들과 현재의 학생을 비교하여 현재 학생을 비하한다. 그리고 학생을 곧잘 무시한다. 정부에서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사에게 부여한 각종 특혜들이 마치 자신한테서 나오는 것인 양 착각하여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다. 곧 내신과 수행평가 등을 통해 학생을 협박한다. 이런 부당한 압박에 대해 약자인 학생은 정규전을 벌일 수 없다. 이 때 약자의 저항논리인 인터넷 테러를 감행하는 것이다. 할 말이 많은데 그것을 토로할 통로가 없으니 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교직은 다른 직종이나 사교육에 견주어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현실에 안주하기 쉽다. 그런데 견주어 학생은 여러 교육 상황에 노출되어 교사를 비교 평가를 할 기회가 많다. 학생들은 교내에서도 교사를 나름대로 다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점수도 매기고 등수도 준다. 다만 공표하지 못할 따름이다. 그것을 학생들끼리 말하며 때로는 통신 매체에 올리는 것이다. 교사들은 지시와 명령에만 익숙하여 학생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학생의 생각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자기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래서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친구들과 말하기를 좋아한다. 차라리 인테넷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말하는 것이 교사들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기 때문에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 2. 학부모라고 왜 교사에게 할 말이 없으리오. 다만 참을 뿐이다. 학부모는 교사에게 자식 맡긴 죄로 자기 할 말을 제대로 못한다. 자신의 철학과 교사의 철학이 다르면 그들은 교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슬기를 발휘한다. 경험의 학교에서 수업료를 주고 배운 지혜이다. 그러나 학부모가 교사에 대해 뒷소리까지 참지는 않는다. 그들도 교사를 꽤 정확하게 평가한다. 등급을 매겨 구분한다. 요즘 학부모 가운데는 교사보다 지적 수준이 높은 경우가 많다. 학부모와 교사는 학생을 매개로 해서 맺어지는 일시적인 관계이다. 그러니 문제가 나면 마냥 참지는 않는다. 부러움과 원망의 대상인 교사의 잘못을 잘 참지 않는 것도 요즘 학부모의 한 속성이다. 교사를 직접 자극하여 자기 자식에 피해는 입지 않게 하면서 다른 학부모들과 교사를 놓고 말을 많이 한다. 더구나 중소도시에서는 소문이 빨라 어떤 교사가 어떻다는 정도로 세밀한 정보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한국은 인맥 사회라서 몇 사람 거치면 어떤 사람에 대해 금방 알 수 있다. 학부모는 대개 교사에 대한 나쁜 추억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다니면 몇십 명의 교사를 만나게 되니까 그 중에서 좋지 않은 교사를 만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 추억을 되살려주는 교사 유형을 자녀와 관련하여 만나면 학부모는 참지 않고 할 말을 한다. 요즘은 학부모가 교장실이나 교육청으로 곧 바로 전화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학부모는 성인으로서 교사의 이중성을 많이 알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에 미달한 교사들을 힐난한다. 3. 사회면에서 볼 때도 교사는 말을 들을 소지가 많다. 교사 집단은 동질성이 강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전교조가 다른 어떤 공무원 노조보다 빨리 출범한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단체가 교육 개혁이나 학생 교육의 질을 올리는 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조직을 보존하기에만 급급하니까 교사집단이나 교원단체를 사회에서 혹평한다. 그들은 변화를 거부하며 그저 편하게 일하고 우대받는 데 익숙한 집단으로 사회에 알려져 있다. 다른 노동자가 볼 때 임금이나 근로 여건 등에서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교사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직종의 사정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교육개방을 반대하는 쇄국주의자들로 인식되어 있다. 세계는 지금 교육 개방을 통해 자국의 교육 경쟁력을 높이고 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일본 태국 중국 인도 싱가포르 등만 보아도 경쟁적으로 외국 학교를 유치한다. 그런데 우리 교사들은 교육 개방은커녕 국내에서도 경쟁하지 않으려고 교원평가도 몸으로 막는다. 그들은 협상을 모르며 세계적 조류에 눈이 먼 구한말 쇄국주의자들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초기 교육 민주화 운동할 때 쌓아 놓은 좋은 인상을 요즘 거의 다 까먹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도 그 원인을 잘 모른다. 특히 집행부는 그 원인을 알려고 치열하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외국 상황에 밝은 사회인들이 교사들에게 눈총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학생 중에 한국학생이 인구 대비로 볼 때 가장 많은 것을 보면 우리 교육은 하루 빨리 개방해야 한다. 외국 대학을 끌어들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교육적이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의 학교 기능이 이제 종막을 고할 때가 되었다. 지금은 다품종 소량 생산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그런 사안에는 대비하지 않고 예전의 방식만 고집한다. 교육보다 학습을 중시해야 하는데도 아직도 주입식 교육에 매달린다. 그래서 불합리한 학교 체제에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교사들이 앞장선다. 교원단체도 이런 데는 신경을 안 쓴다. 학교 교육이 부실할수록 사교육의 혜택을 받은 부유한 집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데 유리하다. 이런 까닭에 사회적으로 교사들을 매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도 교사들은 서민들이 분노하는 원인을 애써 듣지 않는다. 이러니 사회의 원성이 그치지 않는다. 4. 정부 때문에도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들에 대해 불만을 많이 갖는다. 정부는 입시제도를 해마다 고치다시피하고 교육부 수장을 수시로 바꾸어 교육을 일년지소계로 만들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혼란이 가중되어 학생이나 학부모가 도무지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게 하였다. 그러니 학생이나 학부모의 불만이 정부를 향해 쏟아지는 것이다. 그 유탄이 교사들에게도 튄다. 평준화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교사들이다. 물론 평준화 정책은 공과 과가 있다. 다만 학생을 학교에 배정해주니 어떠한 경우에도 학교는 망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사가 잘 가르치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학교 내 평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제도가 사교육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이래저래 학부모의 불만은 교사를 향한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이전에 교사를 정치 지원자로 생각하는 사고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을 정치의 시녀로 두었던 시절을 아직도 못 잊고 있다. 그래서 교육 개혁을 과감히 시행하지 못하고 교원단체의 눈치만 보는 무능한 정부가 되었다. 개혁을 원하여 국민들은 표를 주었는데도 학생이나 학부모가 원하는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지 못하니 학생과 학부모는 정부와 더불어 교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부는 교사도 학부모도 다 놓치고 말았다. 5.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정부는 이제라도 교원 평가제를 강력하게 실시하고 학생과 교사가 좀더 대등한 사이가 되도록 교사와 과목 선택제를 도입해야 한다. 과목수와 수업시수도 줄여야 한다. 교육 시장 개방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교원단체는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는 우를 범하지 말고 전체적인 차원에서 어떤 정책이 진정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것이며, 교육 본질에 더 합당한지 생각해야 한다.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협상의 법칙도 무시하는 비교육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학부모는 그런 교원단체에게는 등을 더 돌릴 것이다. 교원단체는 학부모 수준이 교원단체가 출범할 때인 80년대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상황이 바뀌면 전략도 전투 방식도 수정해야 한다. 전쟁할 때 사령부는 흔히 최전방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 일신이 위험에 처했다고 자기 중심으로 전략을 짜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사나 교원단체를 보면 최전선의 소총수들뿐이다. 자기가 위험하다고 학생이든 학부모든 정부든 사회든 가리지 않고 어디에든 무차별 소총을 쏘아댄다. 그러지 말고 전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상황을 잘 판단하여 우리 교육을 발전적인 데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바란다.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실리콘벨리의 투자자 이종문 사장의 말이 생각난다. '비행기 납치범하고는 협상할 수 있어도 한국 교수와는 협상할 수 없다.' 그런 교수한테 배워서 우리 나라 교사들은 앞뒤가 그렇게 꽉 막혔는가. 그래서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가. 이렇게 동네북이 요란하게 울리는데도. |
출처 : 교육개혁
글쓴이 : 물빛 원글보기
메모 : 교대 교수들을 꽤나 많이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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