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와 저주의 신 여호와 여호와는 기독교인들로부터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한 신인가? 그러나 신학교에서 가르쳐주는 '협박의 하나님'(God of intimidation)이라는 용어는 알고들 구약속의 여호와에 대해서 고찰해 보면, 현대인들이 봐도 도저히 신의 행동으로 납득할수 없는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 등의 경전을 보면 신이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는 찾아 볼래야 찾아 또한 성경에도 사탄이나 마귀는 사람을 유혹할 뿐, 사람을 죽이고 저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든 짐승이든 죽이고 저주하고 겁주고 위협하는 건 여호와뿐이다. 구약의 여호와는 가히 폭군이라고 할만하다. 대표적인 예는, 이방인들의 갖난아기까지 죽여버라고 명령을 내리는 대목이다. 구약속의 사무엘 상을 찾아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 사울에게 이웃 아말렉과 전쟁을 그리고 여호와는 사울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어린이)와, 여호와는 어린이와 젖먹는 갖난아기 까지 죽여버리라는 참혹한 저주의 명령을 내린셈이다. 사울왕은 아말렛의 왕 아각을 끌어왔고 대승을 거두었지만, 아말렉 사람을 죽이는데보다 이것이 여호와를 성나게 했으며, 명령에 순종치 않은 사울에게 여언자 사무엘을 통해 그가 "사마리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사마리아 지방의 사람들이 배신을 했다고, 어린이들을 죽이고 한술 더떠서 임신한 여자의 갖난아기를 죽이는 대목은 또 있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는 유명한 모세의 출애굽기의 일화이다. 출애굽기 11장~14장에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히브리민족을 풀어주지 않자 여호와는 분노한다. 여러재앙을 이집트에 내려도 파라오의 마음이 변하지 않자, 최후의 방법으로 파라오나 전 이집트의 집집마다 죽어버린 아이를 부둥켜 안고 곡성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눈물을 흘린 파라오는 유대인에게 굴복하여 그들을 떠나라고 말하게 된다. 어른들은 그렇다고 치자.아무것도 모르는 갖난아기들이 왜 희생되어야 하는가? 그저 단순히 적대적인 이방인들의 씨를 말려 놓겠다는 저질스러운 저주에 지나지 않는가? 어째서 아기들까지 죽여야 하는지는 출애굽기 20장의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린 계율을 보면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 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여기서 알수 있듯이, 오늘날에는 아기도 하나의 인간으로 취급하지만, 고대인의 관습중 연좌제 성경속의 여호와 역시 그 당시 고대인의 사람들의 생각을 전혀 벗어나지 못한, 매우 시대 이방인들의 갖난아기까지 죽이라는 저주는 새발의 피일 뿐이다. 이방인들에 대한 여호와의 저주는 끝이 없다. "어떤 성에 접근하여 치고자 할 때에는 먼저 화평하자고 외쳐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이 구절은 [공동번역판]에 의거했다. [개역한글판]이 이상하게 번역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개역한글판을 제외하고 [KJV],[공동번역판],[표준새번역]은 모두 같은 내용이다. "너희 중 어떤 잡류가 일어나서 그 성읍 거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이방인 남자는 전부죽이고, 여자와 재물은 약탈하라는 여호와 말씀이다. 하지만 신명기13장에 있는 약탈한 물건은 전부 태워버리라는 구절과는 어긋난다. 이방인들을 죽여버리고 약탈한 물건은 태워버리던지 소유하던지는 마음대로 해석해도 된다. "곧 네 사방에 둘러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다른 종교를 믿자고 하는 자들은 전부 돌로 쳐죽이라는 내용이다. 위에서 제시한 [개역한글판]에서는 비교적 온건하게 번역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서론에서 밣혀 두었듯이 단군상을 파괴하는 목사들은 위의 구절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이방신의 기드온이 바알상을 파괴한 아래대목에도 나와있다. ".........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사사기6장 25절} "단들을 훼파하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고 진멸하고 그 신을 위 구절은 그다지 잔인해 보이지 않지만,[공동번역판]과 [표준새번역],[KJV]를 보면 원문에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넘겨 주는 민족을 전멸시켜야 한다. 그들을 가엽게 이처럼, [개역한글판]은 상당히 노골적으로 잔인한 부분을 순화시켜서 조작을 한 흔적이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열국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예레미아서의 18장, 19장에 보면 예레미아가 여호와에게 원한을 갚아달라는 저주의 기도를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자신의 형제와 싸우라고 오히려 신이 시킨다. 화해와 용서가 아닌 자신에게 거역하면 전쟁으로 모두 휩쓸어버리라는 것이 구약속의 이 대목들을 읽으면서 과연 이것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과연 신이 할만한 말씀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라고 구약에서 보여주는 여호와의 말과 행동들은,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을 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또 라고 말하며 복수하지 말 것을 당부했던 예수의 말과도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번엔 이방인들에 대한 뿐만이 아니라 율법과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자에 대한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위 구절은 무속적인 행위를 금지하는 구절이다. 웃기게도 박수무당이라고 번역을 해놓았지만, [공동번역판],[표준새번역]판을 보면 내용이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철없는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려 대자 엘리사는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를 했고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율법을 지키지 않고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는 이유로 돌로 쳐죽이라고 여호와가 명령했다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히브리 민족으로부터 언약궤를 손에 넣었지만, 여호와의 재앙에 못이긴 블레셋인들이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다윗이 수레로 언약궤를 운반할 때 갑자기 소들이 뛰어 언약궤가 떨어질까봐 언약궤를 손으로 열왕기하에서는 아합왕의 후계자인 아하시야가 병에들어 점을 보게되었는데, 왕이 선지자 그러자 겁이난 아하시야왕은 엘리야를 만나고 싶어서 오십부장(五十夫長)에게 엘리야를 만나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결국 이런 짓이 두 번 반복되어 순식간에 100여명의 사람이 여호와의 불에 타죽는다. 허구(虛構)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가볍게 여기는 포악한 여호와와 사악한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민수기 26장 61절] 아론의 두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집안에서 피우던 불로 제단의 불을 피우려다가 여호와에게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여호와의 힘으로도 철병거로 무장한 강력한 원주민은 몰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사기 그건 그렇다치고 3장에서의 다음구절은 가관이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동 일대를 다 정복하지 않고 적을 남겨 놓은 이유는 전쟁을 모르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그러나 정작 엉뚱한 사람들이 벌을 받는 아래의 구절들은 어떠한가? 사무엘하12장 15절에는 다윗이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낳은 아이를 여호와가 쳐서 심히 앓게 죄를지은 것은 다윗인데 왜 철모르는 갖난아기가 죽어야 할까? 그러나 이 사건은 아래구절과 너무도 차이가 난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고 해 놓고선 다윗 대신 그 아들을 죽인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위 구절은 다윗왕이 여호와가 시키지도 않은 병적 조사를한 죄의 대가로 벌을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해 무려 7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백성들이 죽게 된다. 그것도 7만 명밖에 안 죽은 것은 여호와신이 인정이 많아서다고 한다. 천사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하려고 했는데 인정 많은(?) 여호와가 "이제 그만하면 됐다. 손을 죄를 지은 사람은 마음대로 병적조사를 한 다윗왕인데, 정작 벌을 받은 것은 아무 죄 없는 백성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다윗왕이 우리야를 최전방에 보내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자 여호와는 예언자 나단을 죄를 지은 것은 다윗왕인데, 그 벌은 아무 죄 없는 그의 부인들이 당하여야 한다니 너무 다윗의 부인들이 다윗에게 간통을 저지르라고 부채질이라도 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아무래도 이건 너무 여호와는 다윗을 너무 편애한다. 너무나 관용적이다. 오히려 사울이 여호와의 명령을 거부해서 왕위에서 물러난 것보다, 다윗의 죄가 더욱 크다. 백성을 7만명이나 죽일 정도의 죄와 간통죄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엉뚱한 사람들만 죽인다. 여호와의 믿음의 시험은 어떠한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시험을 위해 노경에 얻은 귀한 아들을 죽일정도의 모진 마음가짐을 성경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윗왕의 죄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백성들 7만명과 다윗의 시험을 하거나 벌을 내리는 것은 좋은데 왜 하필 아무 죄 없는 사람을 희생시키는가? 결국 성서란 인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신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목숨이란 한낱 파리 단지 하나의 교훈을 주기 위해서, 하나의 시험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야만 했을까? 오죽하면 초대기독교시대부터 시작되어, 5세기가 될때까지 약 400년 이상이 소아시아에서 '마르시온'(Marcion. A.D 144)은 구약의 여호와는 열등한 유대인의 잡신으로 제시하고, 대신 그들의 주장은 정말 허튼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또한 종교개혁 당시 어떤 사람이 루터에게 이 기회에 구약을 성경에서 아예 빼버리면 기독교인들이여, 제발 눈을 뜨라. 오히려 비기독교신자인 본인이 기독교인 여러분들께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목사가 설교시간에 읽어주는 성경구절만 편식하지말고 성경을 전부 읽어보라는 말이다. 성경의 어두침침한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사악한 구절들을! 그리고, 여러분이 추종하는 신을 제대로 보라. 여호와(야훼)는 유대종족의 토템신일뿐이다. 여호와는 구약의 신이다. 유대교의 율법 속에 갇혀 있는 신이다. 구약의 여호와는 기독교인에게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낡은 약속 속의 폐기되어야 할 고대의 이스라엘의 잡신이다. 또한 기이하게도 '야훼'라는 이름이 신약성경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구약성경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7,020회나 나와 있고, '여호와 닛시'(출17:15)로 1회, 물론, 그 이유는 신약이 헬라어로 적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대교인들이 말한 하나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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