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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절집 개, 깜순이의 치밀한 자식보호

봄돌73 2007. 7. 9. 01:02

처음 절집을 찾아왔을 때 깜순이의 모습

 

절집 개 깜순이. 지난 4월 초파일 전에 절집으로 들어 온 깜순이는 처음부터 수놈들을 여럿 끌고 다니면서, 절집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어 놓더니 급기야는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남들은 깜순이를 보고 스토커라고 부른다. 이놈이 나만 움직이면 지가 무슨 호위병이라도 되듯 보조를 맞추어 항상 곁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출타라도 했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절집 문 앞까지 달려와 누워서 난리를 피운다.


그러던 깜순이가 언제부터인지 절집 고양이들과 세력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절집에는 5~6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데 깜순이만 나타나면 나무 위로 기어오르고, 줄행랑을 치기에 바쁘다. 아마 새끼를 가진 깜순이가 미리 기선을 제압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인가 보다. 그러는 사이 절집에 커다란 페르시안 고양이라고 하나, 턱이 쳐지고 털이 많은 놈 말이다. 이놈은 영 건달 같다. 걷는 폼하며, �아도 도망도 안가고 느물거린다. 거기다가 절집 고양이들을 다 제압하고, 밥도 지가 먼저 차지한다. 이놈과 깜순이가 심야에 대결을 벌여, 깜순이가 판정패를 당했다. 이 고양이 크기가 깜순이만 하기 때문이다.

 

이발을 하고 난 깜순이 


출타를 했다가 며칠 만에 돌아오니 반갑다고 뛰어나오는 깜순이의 배가 놀랄 만큼 불러있다. 그러더니 며칠 동안 괜히 안절부절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해산을 할 자리를 찾기 위함이었나보다. 더욱 이상한 것은 자꾸만 낙엽 같은 것들을 끌고 다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저렇게 낙엽을 물고 다니는 것일까? 깜순이 제가 새도 아닌 것이. 그렇게 하루가 가고, 며칠이 지났다.


어제는 2007년 7월 7일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길일이라는 날이다. 아침에 뒤를 따라다니던 깜순이가 11시가 넘어 보이지를 않는다. 평소에도 산으로, 마당으로 하도 잘 돌아다니는 놈이라 어디로 마실이라도 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았다. 점심때가 되면 틀림없이 턱을 받치고 있어야 할 깜순이가 보이지를 않는다. 걱정이 되어서 깜순이를 불렀더니 컨테이너 밑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부르던 배가 홀쭉하다. 발은 다 젖어있고, 여기저기 무엇인가가 묻은 것 같다. 놀라서 컨테이너 밑을 들여다보니 새끼들이 낑낑대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컨테이너 밑에 들어가 새끼를 낳았다. 세상에 혼자 컨테이너 밑으로 들어가 새끼들을 낳다니.

 

 

깜순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컨테이너 주변을 기와로 막고(위) 유일한 출입구(아래) 


우선 새끼들이 고양이들한테 피해를 당할까보아 주변을 기와로 빙 둘러 막고, 새끼들이 호흡을 할 수 있도록 가까운 곳은 망으로 막았다. 소리로 보아서는 4~5마리는 되는 듯하다. 깜순이 같은 놈들은 새끼를 한두 마리밖에 낳지 않는다고 하는데 초산이라 그런지 많이 낳은 것 같다. 손전등을 비쳐보아도 보이지를 않는다. 방법이 없을까? 새끼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캠을 들이밀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주변을 온통 흙을 쌓아 방어벽을 만들어 놓고 낙엽 등 검불을 끄집고 다니더니 그것이 새끼들을 낳을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깜순이는 아마 컨테이너 밑이 최상의 장소라고 생각을 했는가 보다. 고양이들에게 해를 입을까봐 그 장소를 택한 것 같다. 너른 곳에서는 고양이가 활동을 잘 할 수 있지만, 천정이 낮은 컨테이너 밑은 아무래도 고양이들에게는 불리하다. 그만큼 새끼들을 보호하는데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더욱 흙을 쌓아 올렸으니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깜순이가 다니는 통로 밖에는 없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렇게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방비를 하였을까?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고 새끼들만 지키고 있다. 땅을 파서 움푹하게 만들어 새끼들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리고 햇볕이 드는 곳에다가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참 대단하단 생각만 든다.   

 

          컨테이너 밑에 흙더미를 만들고, 낙엽들을 모아 보금자리를 꾸민 깜순이
   

예전 같으면 산으로 올라가 변을 보고 내려오던 깜순이다. 그런데 새끼를 낳은 후부터는 멀리가지 않고, 산 입구에 볼일을 보고 바로 내려와 새끼들에게로 간다. 아마 첫 새끼들이니 애정이 남다른가 보다. 그것보다도 새끼들이 안위가 걱정이 돼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제 무척이나 좋은 날에 이 세상에 태어난 새끼들을 보려면 아마 저놈들이 눈을 뜨고, 컨테이너 밑에서 나와야만 할 것 같다. 궁금하지만 참아야지 별 도리가 없다. 그저 잘 자라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깜순아 고생했다. 그리고 장하고, 미안하다. 

 

             

 

(첨언)오늘 오후 깜순이가 잠시 출타한 뒤에 캠을 넣어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오물오물 새끼들이 움직인다. 낑낑대는 것이 어미를 찾는것 같다. 다섯마리는 될 성 싶다. 고넘들 참.

출처 : 누리의 취재노트
글쓴이 : 온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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