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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만불? 코리안 파이는 누가 다 먹었나요?

봄돌73 2007. 8. 30. 17:27
서양인들이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 아마도 파이일 것이다. 얇은 밀가루 반죽위에 여러 가지 재료들을 얹어 구워 먹는 것이 파이이다. 우리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 빈대떡이었다. 오죽하면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하는 노래 가사가 있었겠는가. 만드는 방법과 재료에서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라는 점에서 빈대떡과 파이는 비슷하다. 그래서 파이라는 명사는 사회의 경제적 과실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경제 성장과 분배의 이야기를 할 때 파이(Pie)를 예로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파이를 더 크게 만들어서 많이 먹을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덜 먹더라도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어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공방은 아주 오래된 정치, 경제적 논쟁거리였다. 오랜 시간동안 논의가 있어 왔지만 여전히 정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파이를 더 키울 여력이 있을 때는 분배보다는 성장을 강조하게 된다. 반대로 파이가 더 이상 커지기 어려울 때는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에 우리 사회가 더 치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앞으로도 고속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는 듯이 보인다.

한국은 이미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돌입한 것으로 예상된다. 2만불이 되었으니 국민들의 삶의 절대적 질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다. 물론 과거의 10% 대 성장을 감안한다면 5% 성장은 사실 부족해 보인다. 2만 불 성장까지는 어떻게 가능했겠지만 그 이후로는 더 어두운 전망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우리 사회는 이미 저성장 국가로 진입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7% 성장을 말하는 어느 정치집단의 말은 그저 허구일 뿐이다. 우리의 7% 성장은 중국의 15% 성장과 맞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획기적인 도약의 기반을 마련하지 않는 한 앞으로 경제 성장은 더욱 정체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국제 사회도 대한민국이 10대 경제 대국에 드는 정도의 성장으로 만족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좁은 국토와 척박한 자원, 그리고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를 감안했을 때 그 정도도 엄청난 기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파이를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면 지금까지 희생하고 적게 먹었던 사람들에게 더 나누어줄 방도를 찾아봐야 한다. 파이를 크게 만들 밀가루도 적고 재료도 적은데 파이를 키우겠다고 하면 파이를 더 얇게 만드는 방법 밖에는 없다. 넓어졌어도 더 얇아진 파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5%의 성장은 대외적으로 우리의 화폐 가치를 높여 주기는 하겠지만,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국민들이 누리는 경제 성장의 혜택은 거의 없다.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물가가 상승한다면 소득이 늘어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해외여행을 하는 국민 중 하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최고 수준이고 경제 규모가 세계 2위이지만, 그런 높은 경제 수준을 일본 국내에서는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고단하다. 그러니 비싼 엔화의 혜택을 누리려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얼마간을 즐기다가 다시 국내로 돌아오면 여전히 가난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경제성장의 목적이 넉넉하게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경제가 성장했다면 내 삶의 터전에서 나의 삶이 더 나아져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 이상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도 일본 국민들과 다를 바가 없다. 지난 30년간 몇 백배의 경제 성장을 이뤘다고 자부하지만 우리의 삶이 몇 백배 나아졌을까? 여전히 자기 집 한 채 갖는 것이 꿈인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대부분의 성장 결실이 부동산에 집중되다 보니 실제 생활의 질이 나아진 바는 거의 없다. 예전보다 조금 좋은 재료를 쓴 공간 속에서 살고 있는 정도일 뿐이다.

반면에 유럽 대륙의 선진 국가들은 어떤가. 한 때는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독일의 경제 규모는 일본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역시 경제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많은 후발 국가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오히려 당사국 국민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이다. 지금까지 거둔 경제적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며 별 고통 없이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마간의 성장을 위해 대다수의 국민을 희생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알고 있다. 소수에게 열 개를 주고, 다수에게 한 개를 주는 것보다는 소수에게 다섯 개를 주고, 다수에게 두 개를 주는 것이 국민 통합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 스스로가 가장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고 있는데 외부의 편협한 잣대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성장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성장이란 단어가 가진 허구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적정한 분배가 뒤따르지 않는 성장은 오히려 성장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일년에 키가 20센티가 컸는데, 만약 머리만 20센티가 자랐다면 부모와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성장도 그와 같은 것이다. 파이가 아무리 커져도 나에게 돌아오는 파이의 상대적인 크기는 오히려 작다면 나는 오히려 더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성장도 좋지만 이제는 분배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중국의 성장과 도전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미국의 슈퍼 파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잠재적 도전자는 바로 중국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매년 10% 이상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이미 웬만한 국가들의 경제력은 중국에 추월당한 상태이다. 그러나 나는 중국이 슈퍼파워가 될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 솔직히 완전히 수긍할 수 없다. 2005년에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 1천 불을 넘어섰다. 중국은 이에 대해 크게 자랑을 하지 않았는데, 주변국가들은 중국이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중국은 조심스럽기 보다는 근심스러운 것 같다. 지금의 10% 성장과 일인당 국민소득 2천불을 위해 너무나 많은, 아니 적어도 90% 이상의 인민들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성장을 통해 모든 국민이 그 과실을 골고루 누릴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전 세계의 자원과 재화를 다 끌어다 쓴 결과, 부자들이 누리고도 넘치는 떡고물이 서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자원은 꼭꼭 숨겨놓고 남의 자원을 가져다가 고갈시키고 있는 것이 미국이다. 외부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끊임없이 미국으로만 몰려들고 있다. 그러니 모든 나라들이 미국처럼 살겠다고 해도 불가능한 이야기일 뿐이다. 미국이 전 세계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에 대한 착복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장을 외쳐도 미국의 위성국가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종속적으로 될 것이다.

중국이 미국처럼 강대국이 되겠다고 미국식 성장 모델을 택한 것은 아무래도 잘못된 선택처럼 보인다. 우리 역시 더 이상 미국식 모델만 생각하며 살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식 성장 속에서 몇몇 소수는 계속 부자가 되겠지만 대한민국의 부자들은 그 과실을 다수에게 돌려줄 의향이 없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위기에 빠지거나 더 뽑아 먹을 것이 없어지면, 자기 돈을 싸들고 외국으로 혼자만 도망갈 사람들을 위해 이 땅에서 평생 살아갈 사람들이 희생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분배를 중요시하면 성장이 멈추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일시적으로는 성장에 정체가 올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우리가 성장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지금의 5% 성장이라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분배를 중요시하는 국가들도 3% 정도의 성장은 다 거두고 있다. 우리보다 성장률이 조금 낮은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더 고도로 성장한 국가이기 때문일 뿐이다.

분배는 단순히 나눠먹기가 아니다. 분배는 국민 각자에 대한 사회의 투자이다. 재능과 노력을 사회에 돌려줄 준비가 되어있는 각 개인들을 사장(死藏)시키지 않는 것이 분배이다. 능력 있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분배인 것이다. 능력 있고 노력하는 부자들의 것을 놀고먹는 빈자에게 나눠주자는 주장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성장은 이미 정체에 들어섰고, 성장 위주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랐다. 이미 10년 정도 전부터 지금의 상황에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나 늦어 버렸다. 모순된 현실을 바로 알려야 할 사람들의 직무유기가 컸고, 일반 국민들 역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환경 보호와 개발을 함께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환경 개발 이니셔티브(Initiative)가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런데 성장과 분배의 관계는 개발과 환경의 관계와 비슷하다.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을 위해서는 분배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분배는 일종의 환경 보호와 같다. 환경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듯이 분배는 부자와 빈자의 구별을 떠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과제이다. 보호된 환경이 개발을 촉진시키듯 실현된 분배는 성장을 촉진시킬 것이다.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 이상 성장은 없다. 모두가 똑같이 살자는 것이 아니다.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별적 성과를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가진 것을 무기로 혼자만 더 많이 갖겠다는 탐욕을 버리자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이 자기 혼자의 힘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가진 자가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가진 자의 불요불급한 재화를 없는 자에게 나누어주어 성장과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쓰자는 것이다. 파이를 크게 만드는 것만 신경 쓰지 말고, 좀 더 맛있고 보기도 좋은 한국의 파이(Korean Pie)를 만들어 다 같이 맛보자는 것이다.
출처 : 경제방
글쓴이 : 누구세호 원글보기
메모 : 미국이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라는 건 이미 지나간 옛날 일이죠. 그 부분만 빼면 모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