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전봇대의 진실 (KBS 보도자료)

봄돌73 2008. 2. 3. 16:47
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49516


이것이야 말로 누구에겐 불편한 진실 아니겠습니까?


[이슈&비평]① 전봇대의 진실


<앵커 멘트>





요즘 전봇대라는 단어가 언론에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규제 전봇대, 관료주의 전봇대에 이어 최근에는 마음의 전봇대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전봇대라는 단어에 얽힌 진실을 용태영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리포트>

<질문 1>

용기자, 굉장히 많이 나와요. 언제부터 전봇대 이야기가 나왔습니까?

<답변 1>

지난 18일, 인수위 간사회의에서였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이 기업이 투자할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규제 개혁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전봇대 얘기가 나왔습니다.

2년 전에 전남의 대불공단에 갔을 때 업체들이 불편을 하소연했다는 겁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녹취> 이명박 : "그 폴 하나 옮기는 것 때문에… 일이 안 된다 이거야. 지금도 안 되었을 거야… "


다음날 조간 신문에 전봇대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 전봇대 아직 있다”


“대불공단 전봇대를 아느냐”


“전봇대 하나 못 옮기는 대한민국”


“이명박의 채찍은 현장사례”


당선인이 지적했던 바로 그 전봇대가 지금도 그대로 서 있다고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또 당선인의 예상대로 여전히 업체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한전이 작업에 나섰습니다.

전봇대 한 개가 옮겨지고 한 개는 뽑혔습니다.

작업은 빗 속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됐습니다.

그 다음날 전봇대는 다시 신문에 등장했습니다.


“5년 방치된 관료주의가 뽑혔다”


“당선인 한마디에 빗속 전봇대 작전”


“그 전봇대가 뽑혔다”


“5시간이면 될 일을, 5년 동안 도대체 뭘 했나”


동아일보는 1면에도 전봇대가 뽑히는 사진을 크게 실었습니다.

5년 동안 꿈쩍 않던 그 전봇대가 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이틀 만에 뽑혔다는 게 신문들의 보도입니다.


“이 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5년씩이나 끌어왔다는 사실이 우선 기가 막힌다. 그 동안 관계부처 어느 한 곳도 책임감을 갖고 현장을 찾아가 기업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대불 공단만의 일도 아니다. 우리 경제 구석구석에 기업에 고통을 주고 투자의욕을 꺾는 ‘전봇대’가 수없이 많다.”


“전봇대 하나 옮기는 데 몇 년씩 걸리는 탁상행정으론 근본적인 규제 완화는 불가능하다.”


주요 일간지가 전봇대 기사를 크게 보도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경향신문은 전봇대를 제목에도 등장시키지 않고 기사 속에 작게 보도했습니다.


<질문 2>

용기자, 언론 보도만 보면 그동안 공무원들의 잘못된 관행을 제대로 지적하고 또 제대로 해결했다, 이렇게

해석할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번에 뽑힌 전봇대가 당선인이 지적한 바로 그 전봇대가 맞습니까?


<답변 2>

문제는 그 점이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애초에 당선인에게 전봇대 문제를 제기한 업체들조차도 꼭 집어서 어떤 전봇대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시 대불공단에서는 한동안 전봇대 찾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전봇대 어디 있나 ‘난리’난 대불공단”


중앙일보는 당시 전봇대 찾기에 나선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산 자부에서 서기관이 사무관 두 명과 함께 대불공단에 내려왔다. 전라남도와 영암군에서도 직원들을 보내 분주했다. 한전에서는 일곱 명이나 현장에 나타났다. 현장에 나온 관련기관 임직원들은 문제의 전봇대를 찾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당초 당선인은 다리 옆에 있는 전봇대를 언급했습니다.


< 녹취> 이명박(17대 대통령 당선인) : "대불공단 길 건너에 교량이 있는데 그 교량이 승용차만 다닐 수 있어서 하중을 못 받는 거야. 지나가서 커브 한번 트는데 큰 트럭이 트니까 거기 폴(전봇대)이 서 있는데 그거 몇 달 지나도 못 옮깁니다."


말한 대로의 전봇대라면 공단을 빠져 나와 다리를 지나서 커브를 틀 때 걸리는 전봇댑니다.

하지만 이번에 뽑힌 전봇대는 다리를 건너기 전, 공단 안 사거리에 있었습니다.

이 사거리를 지나 공단을 빠져나가야 다리가 나옵니다.

물론 다리 주변에도 전봇대가 많습니다.

다리도 한 두 개가 아니고 교차로도 많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뽑힌 전봇대가 2년 전 업체들이 당선인에게 문제를 지적했던 그 전봇대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애초에 업체 관계자들도 전봇대 한 두개만 지정해서 문제를 제기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 인터뷰> 유인숙 대표(주 유일) : "그분께서 보신 전봇대가 어떤 건지 저희는 몰라요. 저희가 부탁을 드렸을 때는 그 전봇대 말씀을 못 듣고, 전체적인 전봇대를 없애 주십사 그런 부분이었는데 그 말씀을 듣고 어딜 가시다가 어떤 전봇대를 보셨나 봐요."


지금도 좁은 도로를 따라 공단 주변에는 화물통행에 지장을 줄 수 있는 600여 개의 전봇대가 서 있습니다.

한전은 전봇대가 문제되자 이들 전봇대 중에서 혼잡지역에 있는 두 개를 임의로 선정해서 뽑았을 뿐입니다.

결국 실상을 보자면 다른 곳의 전봇대가 문제의 전봇대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 전봇대는 지금도 여전히 서 있는 셈입니다.


<질문 3>

그러니까 뽑힌 전봇대가 지적했던 바로 그 전봇대인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언론들은 마치 바로 그 전봇대가 뽑힌 것처럼 보도하지 않았나요?


<답변 3>

그렇습니다. 언론은 정체도 불확실한 전봇대가 뽑힌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전봇대는 각종 규제나 탁상행정의 상징이 돼서 여기 저기에 상징물로 이용됐습니다.

전봇대 이야기는 대불 공단을 넘어서서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동아일보는 수출길을 가로막는 규제 전봇대가 울산에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속 터지는 규제전봇대가 곳곳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태안 주민에 대한 생계비가 아직 지급되지 않는 것을 규제 전봇대 사례로 들었습니다.

전봇대는 정치권의 공방에도 등장했습니다.


< 녹취> 이경숙(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 "국가 선진화를 가로막는 것이 이런 전봇대들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단순히 실질적인 전봇대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전봇대가 더 문제가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녹취> 손학규(통합신당 대표) : "그런 조직법을 마치 전봇대 뽑듯이 하루 아침에 강요해서 통과시키겠다"


< 녹취> 나경원(한나라당 대변인) : "5년 동안 여당하면서 전봇대 못 옮긴 신당이 이틀 만에 옮긴 이 당선인에 대해서 일 잘한다 이런 말은 못해줄 망정 이명박 정권이 일 못하도록 트집 전봇대를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신문 제목에 전봇대는 이제 거의 매일 등장합니다.


“‘전봇대’ 50건 당 공무원 1% 감원”


어제 동아일보 1면 제목입니다.

동아일보는 4면 분석기사에도 “전봇대 안 빼면 책상 빼겠다”며 전봇대 제목을 넣었습니다.

중앙일보는 전봇대가 ‘하면 된다’는 정신을 일깨워줬다고 지적했습니다.


“5 년간 버티고 서 있던 전봇대가 한 순간에 뽑혀나가는 장면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 사회의 미덕 하나를 일깨워준다. 바로 ‘하면 된다’는 정신이다. ‘하면 된다’ 정신이야말로 개발연대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지탱하고 이끌어 온 힘이다.”


하면 된다 정신, 다시 말해 전봇대 정신이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목표가 된 셈입니다.


<질문 4>

용기자, 하면 된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인데요,

어떻습니까? 그럼 전봇대가 뽑히고 나서 업체들의 불편이 해소됐나요?


<답변 4>

당연히 그렇지는 않죠. 유감스럽게도 업체들의 불편은 여전합니다.

애초에 문제의 본질은 전봇대 한 두 개가 아니었고 지금도 공단 주변에는 많은 전봇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전봇대가 뽑혔다는 도로입니다.

화물차 운전사들의 불만은 여전합니다.


<인터뷰> 화물차 운전사 : "해결 안 돼요, 저걸 가지고. 저걸 하나 뽑았다고 해서 저거만 돌아가면 될 것 같아요? 안 되죠. 양쪽 다 걸리죠. 전체적으로 다 넓혀야 돼요. 그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죠."


불편을 주는 건 전봇대만이 아닙니다.

대불공단 진입 도로는 가장 넓은 곳이 4차선입니다. 대형 화물이 통과할 때 전봇대 뿐만 아니라 가로등과

가로수도 걸립니다.


<인터뷰> 유인숙 : "여기 다 뜯었거든요. 근데 우회전하면 여기 전봇대가 다 걸리죠. 가로등 가로수 걸리기 때문에 저기서 역주행을 하고 가게 됩니다."


도로는 화물차의 무거운 하중을 견디지 못해 곳곳이 패였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립니다.

당초 43톤의 하중을 견디도록 시공된 다리지만 위로는 100톤 200톤, 심지어 500톤짜리가 지나다닙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런 다리가 한 두 개가 아닙니다.


< 인터뷰> 유인숙 : "왜 그걸 옮겼는가 뒷 애길 들어보시지 않고 쉽게 전봇대 두 개로 해결됐다. 이렇게 보도를 하시면 안 되죠. 두 개 뽑은 걸로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라 산단이나 영암군에서 가로수 가로등 전봇대 한꺼번에 1.2키로 구간이에요. 구간이."


대불공단이 이런 문제를 안게 된 배경은 1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 갑니다.

대불공단은 지난 97년 일반산업단지로 조성됐습니다.

도로와 다리, 전기 등 기반 시설도 일반산업에 맞도록 설치됐습니다.

그러나 4년 전부터 조선 업체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길이가 20미터를 넘고 무게는 5백 톤에 이르는 대형 선박 블록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도로와 다리, 전기시설은 그런 화물을 고려해 설계되진 않았습니다.

당초 일반산업단지로 조성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산업단지 관리를 맡고 있는 지방자치 단체는 영암군입니다.


<인터뷰> 김성배(영암군 지역경제과장) : "대형 블록 이동을 위해서는 인프라가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26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법적으로 공단 관리를 지자체가 맡고 있기 때문에 산자부의 지원금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영암군은 4년전부터 전봇대 문제만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전라남도와 한전의 지원을 받아 46억 원의 예산으로 지중화 사업을 벌여서 지금까지 60% 정도가 진행됐습니다.


< 인터뷰> 김성배(영암군 지역경제과장) : "전봇대 하나 뽑고 안 뽑고 그 문제가 아니고 특히 대불산단은 의도했던 바는 조선업체 입주에 따른 구조적 문제, 전봇대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그런 것에 포커스가 맞춰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문제는 전봇대가 아니라 전체 시설 개선을 위한 2600억 원의 예산 마련이었던 셈입니다.


<질문 5>

그렇군요.그러니까 문제는 규제 자체라기 보다는 그 문제를 해결할 예산이 없다 이건데, 그동안 산자부가 탁상 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을 받아오지 않았습니까?

산자부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답변 5>

물론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산자부로 볼때는 법적으로 영암군이 관리를 개선해야 된다 이렇게 되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산자부가 지원할 수도 있는데 유독 영암군만 지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전국에 다른 여러 공단이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데, 영암군에만 2천 6백억을 지원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형평에 문제가 되니까요.

산자부 공무원들은 할말이 있어도 말을 잘 못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자칫 전봇대 공무원으로 낙인 찍힐까봐 못해왔는데요. 최근에 장관이 한마디 했습니다.

산자부 장관은 그제 한 강연회에서 대불공단 전봇대는 제도적인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김영주(산업자원부 장관) :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한 전봇대 이전의 문제가 아니고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탁상행정의 결과가 아니라고 부인한 셈입니다.

연합뉴스는 대불공단 전봇대는 제도적 문제라는 제목으로 산자부 장관의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전봇대를 탁상행정의 상징으로 보도한 조선과 중앙, 한겨레 등 주요 일간지는 장관의 발언 기사를

아예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동아일보가 기사를 실었습니다.


“대불산단 전봇대 죄송”


제목이 연합뉴스와는 사뭇 다릅니다.

제도적 문제 대신에 장관이 전봇대 문제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전봇대 한 개라면 5시간 만에 뽑을 수 있지만 2600억 원은 하루 아침에 마련되지 않습니다.

전봇대 한 개라면 탁상행정이 문제일 수 있지만 2600억 원의 예산은 제도적으로 해결돼야 합니다.

그런데도 전봇대 한 개에 집착하는 보도를 보면 오히려 언론의 시각에 진실보도를 가로막는 전봇대가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질문 6>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아직도 전봇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셈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참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이군요.


<답변 6>

그렇습니다.

공단 주변의 전체 전봇대를 뽑고, 도로를 넓히고, 다리를 고치는 것은 하루 이틀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영암군이 5년 동안 못 했던 이 일, 그 예산 마련을 과연 앞으로 5년 안에는 할 수 있을지, 이걸 끝까지 추적하고 보도하는게 언론의 진짜 역할이 아닐까, 이른바 ‘전봇대 정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만약에 이 역할을 못한다면 5년 뒤 정권이 바뀔 때 그 때 또다시, ‘그 전봇대 아직도 서 있다’라는 1면 기사가 실릴지도 모릅니다.

예, 용태영 기자 수고했습니다.







이름 : 
용태영 검색인기도


출생 : 
1964년


직업 : 
기자


학력 : 
서울대학교


소속 : 


경력 : 
2004년 KBS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주재특파원
2001년 KBS 보도본부 보도제작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