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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사진과 아고라 깃발맨의 진실

봄돌73 2008. 6. 11. 10:41

출처 :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3&articleId=30400

 

 

직장 사람들과 열명 가까이 모여 우루루 광화문을 찾았다. 5번째 집회다.

음식도 싸오고 맥주도 한 잔씩 하며 그야말로 평화 시위 (거의 축제 분위기)다.

도중에 진중권 교수가 와서 인터뷰도 했고, 방송 쪽의 일을 한다는 내 소개 뒤에 조선일보 아니냐는 우스개가 나오기도 할 정도로 나름 유쾌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전과는 한 눈에 차이가 보일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군집을 이루었다는 것이 가장 뿌듯했다.

애당초 광화문은 컨테이너로 재갈을 물려놓은 상태이니 여기 저기 자리를 틀고 소리를 지를 수 밖에...

 

 

그러던 중 의야햐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스티로폼이 등장한 것이다. 그것은 재빨리 쌓이더니 연단이 되었고 그 연단의 점령군은 정체 불명의 인권단체였다.

(정말이지 그 때는 안시성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 이러한 극적인 전개로 시민들은 순간 동요했다)

한동안 진행자의 목소리가 조목조목 울려퍼진다 싶었는데, 그 뒤에서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위의 사진은 집단 스티로폼 쟁탈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이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알 수도 없게 뒤엉켜 (이는 명확한 배후(집행진)가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난리 법썩이었다.

'엄청난 이데올로기의 충돌'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느슨한 대치에 지친 군중이 파격적인 이벤트 앞에 선동이 되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평화 시위에 찬물을 끼얹을지 모른다는 다수의 의견도 솔직히 내 관점에선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 기가 막힌 구호가 들려왔는데 '앉아라. 앉아라','앉아서 같이 봅시다','서있으면 안 보여요'라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아! 지금 연극 보러 온 거 아니잖아! 다 같이 일어나서 그만 두라고 외쳐야지!"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릴 질렀다.

내 말이 과연 틀린 것인가 아직도 의문이 든다.

우리는 상이한 시위 현장을 관람하기 위해 광화문에 모인 것은 아니잖은가...

암튼 그런 치열한 사태가 벌어지는 와중에 극렬한 탑쟁이(스티로폼 탑을 쌓으려는 인물)를 발견했으니 아래의 사진 속 인물이다.

 

미쉐린 타이어 티셔츠를 입고 있는 저 인물인데,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했으며 츄리닝 차림에 건장한 20대 후반 쯤의 사내였다.

그는 오만상 얼굴을 찡그리며 거친 입담을 자랑했는데, 그의 완력에 여럿이 밀려나곤 했다.

'민주주의는 차벽을 넘는다?'

이미 닭장차를 뛰어넘기 위해 조직화되어 있었다는 증거 아닐까?

그리고, 구태여 민주주의 운운하지 않아도 닭장차 넘는 건 일도 아니다. 민주주의가 유행이냐? 아무데나 갖다 붙이게...

(오락실 비행기 오락에는 대부분 3개의 폭탄이 서비스된다. 막강한 건 자주 쓰면 안 된다. 닭장차 뛰어넘는 것에도 민주주의의 의미를 대입할 필요 있는가? 그건 곧 선동 아니겠는가?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는 저 미쉐린 타이어를 지목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진보신당 기자와 정면으로 맞닥들이곤 잠시 정신의 끈을 놓고 말았다.

이것은 용서를 바랄 일은 아니지만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개가 똥을 못 참 듯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생리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미쉐린을 쫓았다.

 

 

미쉐린 탑돌이는 어느새 첨탑까지 올라가 낯익은 깃발을 꽂고 흔들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당장에라도 숨 넘어갈 듯 안절부절 못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이미 게시판에는 '저 사람은 아고리언이 아니다','아고리언이 맞다' 기다 아니다로 잡음이 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만 묻자...

저 모습이 아고라가 지향하는 모습이었던가?

아니, 저 모습을 아고리언이라 믿고 싶은 것인가?

무작정 껴안을 수는 없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저건 아냐..." 난 확실하게 말했다.

 

 

 

한바탕 난리가 일어난 뒤 미쉐린 탑돌이는 슬그머니 군중의 곁으로 내려왔다.

순간 '프락치'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이들을 프락치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아고라에서 그 말을 접했을 때엔, '아니 뭐 이렇게 유아적인 발상이 다 있어? 보는 내가 부끄러워 못 살겠네'..솔직히 그랬다.

지난 번 전경 프락치 사진을 보면서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아닌 것 같기도 하고..'이런 우매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광화문에서 나는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화문 한 복판에 초합금 울트라 철벽을 쌓은 그들이라면 못할 것이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었다.

순간 정말이지... 지가 건설한 청계천의(청계천은 복원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건설이다) 소라탑을 꺾어다 드릴처럼 뚫어버리고 싶었다.

아무튼 미쉐린은 대중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격한 심정을 토로했다.

미쉐린이 쏟아내는 말의 골자는 '그럼 너희가 올라가던가!'였다.

잠깐 난동을 피우다가 슬그머니 훼미리마트 쪽으로 그가 이동했다.

나와 회사 동료도 그를 쫓기 시작했다.

(참고로 훼미리 마트는 중앙 계열이랜다. 일전에도 한 번 올렸지만, 동화면세점 뒷편 위드미 상점도 물건 좋다)

 

 

멀찌감치 떨어져 미쉐린을 관찰하며 사진을 찍었으나 플래시를 터트리면 눈치라도 챌까 어둡게 찍을 수 밖에 없었다.

동료와 이런 저런 얘길 나누던 중, 막 일본에서 건너온 듯한 패셔너블한 시민 한 분께서 말을 건냈다.

"저 놈도 한 패거리에요"

귀가 번쩍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반짝이 모자를 쓴 꽁지머리였다.

 

 

그는 사진 속 인물(노출증 시민)과 어울려 한참을 대화했는데, 이 노출맨 또한 엄청날 정도로 과격한 인물이라,

접두사 접미사가 'x발'로 이루어지는 뒷골목 시궁창 언어를 구사하셨다.

그는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며 개발 새발 하고 있었는데,

근방을 배회하던 미쉐린이 그에게로 다가와 정확히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갑시다 형님. 올라가자구요. 아 x발..가서 저 예비군 새끼들 다 죽여버립시다. 죽여버리자니까요. x발 맞짱 뜰 자신도 없는 x끼들이야"

(철없는 친구야... 예비군이 그렇게 한가한 줄 아냐... 너같은 거 상대하고 있게)

그런 실갱이를 하다가 다시 스티로폼 탑으로 돌진한 미쉐린...

우리는 그를 쫓을까 하다가 기왕이면 대가리를 잡아보자 생각하고 그 곳에서 버티고 있었다.

 

 

 

다른 여러 무리가 더 있는 듯 했지만 집회가 끝날 때까지 덤덤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세 사람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하나 놀라웠던 것은 가운데 있는 인물이 어제인가... 전경 프락치 사진에서 보았던 그 친구와 너무도 흡사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따금씩 반짝이 모자와 대화를 하며 같은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

이거 제대로만 풀리면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경향에 입사원서 넣는다...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사진과 같이 저들은 계속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고

관리자인 듯 보이는 반짝이 모자는 계속해서 주위를 돌며 몇몇 사람들과 조용한 대화를 나눴다.

그 와중에 늙으막한 시민과 젊은 청년과 말다툼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다투게 된 이유는 저렇게 올라가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다로 시작된 듯 보였는데

나이 든 아저씨는 전자, 젊은 친구는 후자의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다툼은 일촉즉발 팔다리가 발사되는 순간까지 갔으나 시민들의 만류로 간신히 떨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패거리(보라색 티셔츠 패거리)가 고함을 질렀다.

"거기 말리지 마요! 그냥 놔둬요!"

아니 뭐 이런 한 끼 잘 쳐먹고 걸레로 입 닦는 소리가 다 있나 싶었다.

집회고 나발이고 간에 싸움이 있으면 말려야 하는 것이고, 어린 놈의 자식이 어른한테 오만 개나발 같은 욕지꺼리를 퍼부으며

나이 쳐먹고 한 게 뭐냐는 둥 그딴 소릴 튀겨대고 있는데...'거기 말리지 마요?'

그 말이 선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와중에도 노출맨은 거리 곳곳을 돌며 이 무리 저 무리에게 시시껄렁한 시비를 걸고 있었고

반짝이 모자는 그런 모습을 기록이라도 하는 듯 관찰하고 있었다.

이들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경우는 없었다. 항상 가까운 거리에서 큰 이동 없이 버티고 있었다.

특히 보라색 티셔츠 패거리 셋은 아주 발바닥에 공구리를 쳐놓은 듯 보였다.

 

 

 

컨테이너 박스 위로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곧이어 숙취를 귓구녕으로 끌어올리고도 남을 여경의 카랑카랑한 경고 방송이 들린다.

방송이 나오자 마자 반짝이 모자는 심복처럼 옆을 지키고 있던 건장한 사내와 함께 군중들 틈에 섞여 천천히 시청 쪽으로 향했다.

 

 

 

반짝이 모자와 줄곧 함께 있던 초록색 티셔츠가 보라색 패거리에 합류했다.

깃발이 휘날리는 순간만큼은 시민들의 환호와 박수가 울려퍼졌다.

더군다나 여경의 상기된 경고 방송은 가뜩이나 밤새도록 지루한 대치에 진이 빠져있던 시민들에게 활력소가 되고도 남았다.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할 때에도 저들은 무표정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내가 본 저들은 어떤 환호도 구호도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같은 장소를 고수하며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고 하나같이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둘 쯤 섞여있던 여자들은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더 머물면서 이들이 정말 말로만 듣던 프락치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카메라의 베터리도 문제였고 함께 갔던 동료들의 출근도 문제였다.

명확하지 않은 증거를 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진들은 개인적으로만 보관하려 했었다.

하지만 여기 저기 프락치네 아닙네 말들이 많은 것 같아,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사진 속 인물들이 프락치인지.. 아니면 혈기 왕성한(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관망자의 모습이었지만) 청춘들인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꼭 하고 싶은 얘기는...

이젠 장기전이다. 하루 이틀 지속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점점 지쳐갈 것이고 점점 혼란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비폭력을 외치며 자정하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오늘 새벽에 느끼지 않았는가?

예비군이 나서지 않았다면 오늘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예비군도 똑같은 시민이다. 아무 것도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군복을 입고 위엄을 보일 수 있는 까닭에 질서 유지의 선봉에 서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몇몇 개인이 전체를 무너트릴 수 있다.

오늘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방관하지 말고 우루루 둘러싸서 멀찌감치 밀어낼 줄도 아닌 행동력을 보였으면 좋겠다.

(미쉐린과 훌떡남은 성질 더러운 내 입장에서도 사실 버거울 듯 했다. 담백한 말로... 그들은 깡패였다)

 

아울러...

시민들 카메라가 대관절 몇 개인가?

찜찜한 거 있으면 따라가서 찍어보고 그랬으면 좋겠다.

채증은 경찰만 하는 게 아니잖은가?

누군가의 베스트 글 처럼... 상상력을 가지고 좀 더 창의적으로 접하지 않으면

이 지루하고 긴 싸움에서 먼저 나가 떨어지는 건 우리가 될지도 모른다.

 

 

 

 

추신1) 위드미 편의점 직원께...

내가 그대에게 그랬지요? '이 곳이 특정 신문사나 기업과 연관 된 업체는 아니죠?'

"예? 아녜요. 그런 거 없어요"

"그렇군요. 페밀리마트가 중앙 계열이라길래, 제가 여기 광고 좀 했었는데 다행이네요"

"예? 예~"

자리를 뜰 무렵 그대가 읖조리듯 마치 탄식인냥 그랬습니다.

"아.... 사람 진짜 너무 많이 온다"

그대의 일과가 빡쎄질 것을 감안하지 못한 발언에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엿같은 것들에게 애먼 돈을 뿌려댈 수는 없잖습니까?

욕보세요... 그것도 애국입니다.

아무튼 악의는 없었다는 거... 알아주세요


추신2) 모든 사진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였고, 명확하게 이들이 프락치라 명하지 않았으니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거나 하진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