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겸 작업실인 여의도의 그 곳 창문 밖으로 요란한 소리가 들렸어.
앞에는 멸공, 뒤에는 새일이라고 써있었어.
방부제를 한 포대 쯤 먹고 불사신이 된 것 같은 늙은이의 목소리가 짜랑짜랑 흘러나왔어.
"미친 영감이... 국회를 세뇌하고 있군..." 그렇게 생각했어.
생방송을 보다가 눈이 뒤집어졌지만 중대한 회의가 있었어.
미팅을 마치고 경복궁으로 내달렸지.
이미 길은 봉쇄되었어.
아마도 당연한 것이겠지.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청운동에서 (청와대 옆)30년 가까이 살았어. 이 부근이라면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어.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걸으며 광화문으로 향했는데... 솔직히 계속 불안했어.
광화문 쪽으로 가는 사람은 나 뿐인 듯 했어.
너무나 평화롭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거스르며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내가 어쩐지 이상했어.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이게 옳은 걸까? 순간 묻게 되더라구.
'한 5천명 쯤 왔을까?... .... .... 그럼 이제 5천 1명이 되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광화문으로 향했어.
새문안 교회를 지날 무렵이던가? 사람들의 행렬이 조금씩 으그러지는 것 같더니...
그 뒤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 있더라...
정말 눈물이 흐를 뻔 했어.
적어도...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님은 증명이 된 거야...
그리곤 잠깐이었어.
청와대로 가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다가 묘안이 떠올랐던 거지.
사람들은 급하게 움직였어.
새문안 교회 골목이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꼼짝도 할 수 없었지.
공사장에 있는 모래를 이용해서 모래주머니를 만들기 위해 갔던 거였어.
그러다가 공사장의 철판 담장을 뜯어내기 시작한 거지.
과격하다구?
그렇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 정도는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우린 멀미가 날 만큼 참았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러던 중에 닭장차와 맞닿아 있던 낡은 외벽을 사람들이 밀기 시작한 거야.
금방 금이 가더니... 이내 무너졌어.
두 세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통로가 생겼지.
이 많은 인파가 그 구멍을 통해 이동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생각이 틀림없었지.
하지만 우리는 무너가에 홀린 듯 꾸역꾸역 밀고 들어갔어.
담장 건너편엔 기껏해야 서무 평 될까 말까 한 공간 뿐이었는데도 말야.
그만큼 우린 분노했고 절박했던 거야.
잠깐 사이에 비좁은 공간에 콩나물 시루처럼 인파로 가득 찼어.
정말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경들을 밀어낸다는 생각도 쉽지 않았어.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왔고, 일부는 건너편 닭장차를 통해서 뛰어내리기도 했었어.
사람들의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던 그 때...
넘어지지 않으려 중심을 잡으려고 벽을 짚었는데, 벽의 느낌이 아니었어.
그건 프랜차이즈 호프의 창문이었지.
그리고 그 창문 안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어.
커다란 함성, 분노가 섞인 욕설,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 촬영을 위해 몸부림치는 기자들, 전경들의 소리... 그것들이 뒤죽박죽 마치 이것이 지옥이구나... 생각하고 있을 그 무렵
너무도 태연하게 술을 마시며 폭소하는 저들을 보게 된 거야.
무서웠어.
저 무관심이 너무 무서웠고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창문을 뚫고 들어가고 싶었어.
저들과 우리의 거리는 7미터 남짓...
나는 또 찔찔이 마냥 눈가가 시큰했었지.
대치 상황을 멀리 건물 내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사실 세종문화회관 뒷편의 포장마차며 술집에는
시위가 한창인 그 시간에도 술을 마시고 깔깔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야.
전경이 싫은가? 그들이 싫은가?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지.
제발 다른 곳에 가서 즐겼으면 좋겠어.
우리의 절박함을 욕보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야.
저렇게 뚫려있는 세 개의 구멍으로 사람들이 드나들었지.
그나마 한 곳은 사람이 웅크려야 겨우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어.
내가 왜 저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을 뭉그러뜨려야 하는지 모르겠어.
이 사진을 올린 이유는 한 가지 당부를 하기 위해서야.
카메라 장비가 많은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다행스런 일이지.
하지만 우린 이 곳에 촬영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잖아?
한 친구가 저 좁은 통로의 가운데를 막고 한참이나 사진을 찍었어.
주위에서는 소릴 지르며 비키라 했지만 너무 소란스러워 들리지 않았나봐.
증거를 남기고 기록을 하는 것 보다도 우리의 안전이 우선이야.
이따금씩 보이는 직업 사진작가들....
우리 예술하러 모인 사람 아니야. 당신 모델로 모인 사람 아냐.
서로가 조심해 줬으면 좋겠어.
왜 이런 소릴 하냐구?
소화기가 뿌려졌어.
최근 시위에 한 번이라도 참여했던 사람이라면 잘 알 거야.
소화기는 단시간에 아주 멀리까지 퍼지잖아.
앞서 얘기했지만 수 백명이 압사 직전까지 가 있었던 상황에 소화기를 뿌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것도 피할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말야...
어쩌다 보니 전경의 방패 앞까지 가게 되었고 그 때 소화기 여러 방이 동시에 터졌어.
광화문에서 접했던 그 소화기가 아니었지.
피할 공간도 없이 앞뒤도 보이지 않았어.
순식간에 동요한 사람들은 출구룰 향해 전경 밀듯이 서로를 밀었댔어.
정말 지옥같았지.
좁은 통로는 성인의 허리 쯤 되는 가파른 시멘트 턱을 딛고 올라가야지만 겨우 들어갈 수 있어.
아주 매운 포말이 목구멍으로 자꾸 자꾸 밀려드는데,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어.
먼저 시멘트 턱을 올라간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소릴 질렀지.
'살려줘요...살려줘요...'
내가 턱을 오르기 위해 무언가를 세게 팔로 눌렀을 때 나는 그것이 여자의 어깨라는 것을 알았어.
나도 모르게 여자에게 팔을 뻗어 끌어올렸지.
좁은 통로를 겨우 빠져나가 길가 한쪽편에 나뒹굴게 되었을 때는 엄청난 공포가 몰려들었어.
내가 만일 그 여자를 끌어당겨 올려주지 않았다면...
난 엄청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을 거야... 그런 생각 때문이었어.
광화문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
단지 조금씩 물러나서 피할 수 있다는 것 뿐이었어.
닭장차는 사람의 힘으로 끌어내지 못해.
뒤에 대기하고 있는 여러 대의 차량에 와이어로 묶여있기 때문이야.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어.
밧줄을 당겼어.
줄이 끊어져 넘어지면 다시 묶어 당기고, 그렇게 이쪽 저쪽을 오가며 수 십번을 당겼을 거야.
언제 그랬는지 팔목의 살갗은 벗겨져있고 손바닥은 주먹이 쥐어지지 않을 만큼 부어있었어.
이미 이 때부터 살수차는 등장했었지.
다 예고되어 있었던 거야.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해?
놀이동산의 귀신의 집 한쪽 구석같지 않아?
아니야... 여긴 광화문이야.
이명박...
그와의 인연이 조금도 아쉬움 없이 끊어졌음을 다시금 확인하던 날이었어.
경복궁에 있던 동료가 그만의 노하우로 광화문엘 왔어.
그는 항상 집회에 같이 참석하는 양반인데, 그의 가방 속에는 희한하고 즐거운 것들이 가득해서
새벽이 되어서야 뭔가를 먹을 수 있었던 내겐 너무 큰 반가움이었지.
맥주를 한 잔 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살수차가 등장했어.
촛불을 끄기엔 너무 많은 양의 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게다가 기름을 섞어 지독한 냄새를 유발했던...
물에 쫄딱 젖은 아가씨가 다가오더니 우리에게 가방을 맡기고 사라졌어.
시위대는 뒤로 밀리기 시작했어.
아마도 이 시간엔... 시위대보다 전경이 더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
인도도 안전한 곳은 되지 못했어.
그들은 인도의 구석까지 우릴 밀어 붙였지.
나는 아가씨의 가방을 옆으로 매고 이 여자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잠시 후 아가씨가 왔고 우린 가방을 거네준 후에야 다른 곳으로 자릴 옮길 수 있었어.
밤이 깊은 줄도 몰랐는데 어느덧 새벽이 되어버렸어.
젖은 몸을 말리기도 했고
일부는 조선일보를 쳐들어가기 위해 애쓰기도 했고
일부는 녹초가 되어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어.
그렇게 평범한 하루가 다시 시작된 거야.
이젠 이러한 혼란마저 평범해진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지.
가방을 맡겼던 아가씨는 순대와 오뎅 국물을 가져와 우리에게 주었어.
동료가 저녁이라고 가져온 음식도 순대였는데...
하지만 이런 순대라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거야.
우린 순식간에 먹어치웠어.
사진 속 동그라미 쳐진... 만화에나 나올법한 아가씨였는데,
사실 실물로 보면 굉장한 미인이야.
그런데 저 아가씬 이집 저집 떠돌며 가방을 맡기는 듯 했어. 굉장한 열정을 가진 듯 보였어.
그리곤 곧장 강제 해산이 시작되었어.
시청앞 촛불광장 (난 서울 광장이라 부르지 않아. 전국에서 촛불을 들고 상경하는 마당에 서울 광장이 뭐야? 당연히 촛불광장이지)까지 밀려났을 무렵 우린 길을 건넜어.
창의 시정?
조까 지마!
두 문장 중 어떤 게 더 근사해?
우리는 어떻게든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니까...
열심히 시위하고 열심히 일해야 당당한 거니까...
지친 다리를 질질 끌며 차를 세워둔 서대문의 언덕을 오르고 있을 무렵
클락션을 울리며 우릴 세우셨던 렉스턴 여성 운전자분....
아무런 인사도 없이 무작정 저런 팩을 여덟개나 주셨어.
고맙습니다라고 했더니
우리가 더 고맙죠 라고 하셨어.
힘들지만...
저 녹즙 덕에 오늘 저녁도 초를 밝힐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아.
저녁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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