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즐겁다. 우리모두 화를 내자.]
웃기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대부분의 분노는 자기방어기제로부터 출발한다. 외부의 부당한 요인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적극성과 호전성이 증가되며 자신감이 고양되어 일순간 '강한' 자신을 맛보게 해준다. 억눌려 살던 사람일수록 쾌감은 더하다. 자기 방어를 위해 뇌가 분비하는 자가 마약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분노 중독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지금 사회는 집단으로 이 '분노 중독'에 걸려 있는듯 하다. 분노와 증오가 뉴스면을 뒤덮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는 뉴스들을 보자. 박대표가 당했다. 사회 낙오자의 분노가 끔찍한 상황을 낳았다. 학부모가 교사를 무릎꿇렸다. 땅투기에 대한 분노와 정당한 재산권 행사에 대한 분노가 충돌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게, 정규직은 귀족노조에게, 귀족노조는 경영진에게 분노한다. 일본은 애초부터 한국인들을 '뚜껑열리게 만드는' 레파토리였고 빈부갈등은 점점 심해져간다. 각 지역은 서로 치고받다 못해 아예 독립이라도 할 기세다. 분노가 끓어 넘쳐 이 사회를 가득 메웠다. 수업시간에 배운다. 우리민족에게는 두레라는 멋진 공동체요소가 있었다고. 홍익인간이란 말도 배운다. 외적의 침입을 똘똘뭉쳐 막아낸 자랑스런 역사도 배운다. 사실 한민족처럼 파란 만장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그렇게 흔할까? 내부분쟁이 심한 국가는 오래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반만년을 이어온 한국은 적어도 과거에만은 증오가 흘러 넘치는 나라가 아니었다고 짐작해본다. 그런데, 왜, 어떻게 이 사회가 이렇게 바뀌었을까. 한민족의 역사나 문화를 말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우수한 민족이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또라이다.' '그래도 부족함을 훌륭한 민중이 메워 버틸 수 있었다.' 본인이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어느 정도는 정확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수한 지도자를 뽑는것 자체가 민중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척도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민중 입장에서 보면 지도자들은 늘 수탈에만 눈이 밝았다. 하지만 의무가 필요한 시점에는 나몰라라 도망가거나 오히려 나라를 팔아 넘기는 아리따운 분들이 대부분이셨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달라진건 없어 보인다. 나라를 팔아먹고도(친일파) 오히려 큰소리치고 떵떵거리질 않나, 국민을 지키라고 쥐어준 총을 오히려 국민에게 돌리고는 '구국의 결단' 운운하질 않나, 잘나가던 나라를 물밑에 처박고도(IMF) 당당하질 않나,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으로 난장통을 만들어놓고도 오히려 큰소리를 치기까지 한다. 슬픈 사실은, 그 대안이라고 나서는 녀석들이 오히려 한술 더뜨는 족속들이란 점이다. 지도자를 잘못 뽑은 죄라면 죄겠지만 사실 한국 역사상 지도자를 진정한 의미에서 능동적으로 국민이 뽑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햇수로 치자면 20년도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과거의 가치와 현대의 가치가 충돌에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5년전의 최신 기술이 지금은 쓰레기가 되버린다. 눈이 돌아버릴 정도이다. 반만년동안 억눌리며 억울하게 당해온 역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민중들은 곧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유구한 가치따윈 필요없다. 당장의 승리자가 유일한 승리자다. 미래? 이상? 협동? 헛소리다.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 옆자리의 친구는 곧 입시의 적이다. 하청업체는 노예이며 정치가들은 개와 동기 동창일 뿐이다. '내 단기적 가치 실현'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법도, 질서도, 도덕도 모두 내 이익앞엔 적일 뿐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누구도 챙겨주질 않는데 고생할 필요 있을까? 한민족은 우수하다. 인정한다. 이들은 역사와 경험을 토대로 부정할 수 없는 답을 끌어내었다. '사회와 법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이긴자가 곧 선이자 정의요 진리이다. 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분노는 옳으며, 따라서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 또한 정당하다!' 근거도 있었다. 518 민주화 항쟁은 정당한 분노를 행동으로 옮겨 올바른 결과를 끌어낸 대표적인 예다.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무수한 시위는 모두 이 정당한 분노를 기반으로 출발했다. 억눌려왔던 각종 모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한민족은 터득하게 된 것이다. 분노의 쾌감과, 그 이득을 말이다. 인터넷은 이런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이제는 분노를 표시하기 위해 어두운 술집 구석에서 소주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어졌다. 익명성이 보호해주는 열린 공간이 있다. 저지르고 선동하면 된다. 악플은 활력소고 마녀사냥은 정당한 대중의 심판일 뿐이다. 온라인에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오프라인에서 터트린다는 완벽한 공식이 발견되었다. 마음을 다스리고 논거를 준비해 차분하게 협상하는 것보다는 눈 부릅뜨고 각목들고 고성 지르는 편이 쉽고 빠르게 이득을 가져오는데 누가 대화하려 하겠는가. 인간 사회에는 늘 모순이 존재한다. 분노의 동기는 충분하다. 먼저 터트리는자가 먼저 챙긴다는 진리를 이 땅의 국민들은 뼈골까지 새겨버렸다. 분노의 쾌감이 금수강산을 뒤덮고 말았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만 할까?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는 결국 사고를 당한다. 정당한 분노가 한국에 가져다준 긍정적 효과는 크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다. 민주화, 고도성장, 각종 모순들이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어쨌든 빠르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박대표에 대한 테러에서 보듯 이제는 정당하거나 그렇지 않고를 떠나 '분노' 자체에 취해버렸음을 보여준다. 분노는 자신에 대한 방어에서 멈추어야 한다. 이를 넘어서면 단지 폭력으로 전락할 뿐이다. 지금 사회가 취한 분노라는 마약은 어느새인가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이제는 한숨 돌리며 뒤를 돌아볼 때이다. 온국민이 각자 들고 일어나는 통에 사회의 모순은 어느 정도는 밝혀졌다. 너죽고 나살자식의 해결방법으로는 해결 못할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해답은?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확실하다. 이제는 안색을 가라않히고 손을 내밀때다. 물론 어떻게 보자면 각목 휘두르는것 보다는 어렵고 지루한 싸움이다. 결과도 느리게 나온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 부모가 분노에 취하면, 자식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안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린다. 버릇없고 건방지고 주변을 배려할줄 모른다고. 웃기는 말이다. 갑자기 전국적으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그런 애들만 태어났다는 말일까? 지금의 아이들이나 천년전의 아이들이나 다를바 없다. 유일한 차이점은 순진한 눈동자가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일 뿐이다. 사회전체가 분노에 취한 부작용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부끄러운 부모의 모습은 여기서 끝내야만 한다. 중학생이 교실에서 선생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이녀석에게는 이녀석 나름대로의 분노가 있었을 것이다. 차이점은 참고 대화하느냐, 그렇지 않고 표출하느냐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없이 부모의 모습을 답습한다. 아이에 대한 최고의 선물은 훌륭한 교육이다. 그러나 현 한국사회는 아이들에게 속삭이고 있다. '참지말고 표출해라. 난동피워라. 깔아뭉개라.' 공공장소에서 맘에 안든다고 주변을 뒤엎고 고함을 치는 버릇없는 아이의 모습들... 아마 앞으로는 심심치 않게 보리라 생각된다. 나무랄수가 없다. 우리가 가르친 것이다. 흰 종이에 까맣게 칠해놓고 너는 왜 까맣냐 질타해봐야 우스울 뿐이다. 이제는 숨을 돌려야 한다. 한발 멈추어 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지금 취해있지는 않은지, 내 손에 각목이 들려져 있는지 살필 때이다. '예전에는 한국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던 웃기는 시절이 있었단다.' 가까운 미래, 이런 내용의 말이 오가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 P.S> 한글이 많이 부족하신 분들, 혹은 알바님들을 위해 덧글을 답니다. 아아... 정말 제 친절은 철철 흘러넘쳐 강을 메우고 바다를 이룬다니까요. 0. 분노는 '악'인가? -> 위에서도 말했듯, 그렇지 않습니다. 분노는 자기방어기제입니다. 또한 강한 동기가 되지요. 분노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1. 그렇다면 분노를 표출하는것은 옳은가? ->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중요한 키워드는 나를 위해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강요하는것은 피해야만 한다는 것이겠지요. 위에서도 논했듯 긍정적인 표출이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바꾼 예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분노 표출을 정당화해줄 수는 없습니다. 모든 혁명은 범죄이지만, 모든 범죄가 혁명은 아닙니다. 2. 그렇다면 분노의 역할은? -> 동기부여로서 끝나야 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뜨겁게 일어서되, 합리적인 대화로서 푸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고속도로에서 엑셀을 밟을때 주변 둘러보고, 제한속도 확인하고, 코스 사전 조사하고, 누군가 옆을 달리면 감속해줄 준비를 하고 밟는 엑셀과 아무 생각없이 '나는 미친 본능이다' 주장하듯 밟는 것은 결과는 비슷할지라도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3. 여기서 대화를 논하는 것은 야당 탄압이지 않느냐? -> ...할 말이 없습니다. 국어공부 좀 더 다시 하시라는 말 밖에는. 영어열풍이 불면 뭐합니까? 한글독해조차 안되는데요. 4. 그래서 결론은? -> 무조건적인 분노주장에 사람들이 동정해주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또한 그렇게 세상이 허술하지도 않습니다. 뜨겁게 일어나 차갑게 행동하는게 좀 더 합리적이고 즐겁지 않을까요? 제 글을 읽은 만명중 한분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되새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주제넘은 글은 역할을 다했다고 봅니다. 5. 덧글 하나. -> 전 마사오씨는 싫어하고 박대표와도 생각의 견해가 다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사건에 대한 박대표님의 모습은 '든든한 리더' 바로 그대로라고 봤습니다. 자신이 당황하기에 앞서 주변부터 진정시키고, 꿋꿋히 시련을 대하는 태도는 진정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의견의 차이는 대화와 타협으로 풀면 됩니다. 하지만 의연한 리더쉽은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죠. 박대표님께 박수를 보내며 부디 빠른 쾌유하시길 빕니다. 6. 덧글 둘. -> 한나라당 지능 안티 분들이 많군요. 정말 지능 안티라면 자제하세요. 인터넷의 익명성은 그런짓하라고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지능 안티가 아니라 진짜 제 글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한글 공부 좀 더하시라는 말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군요. |
출처 : 사회방
글쓴이 : 그레이오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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