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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력사건 용의자로 몰려본 경험이 있습니다.

봄돌73 2009. 2. 3. 17:17

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253129&RIGHT_DEBATE=R8



결론 부터 말씀 드리자면 용의자의 얼굴 공개는 절대 반대 입니다.

제가 용의자로 몰려본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일단 제가 경험한 사건은 지금 벌어진 이 사건만큼이나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사건이었습니다.
몇년전에 벌어진 사건 이지만 아직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것 같아서, 자세한 내용은 말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진범이 잡히지 않았으니 저는 아직도 용의자 신분이기 때문이죠. 이게 얼마나 빌어먹을 상황인지 상상이 가십니까? 무고 하지만 수년간 용의자로 살아가야 한다는게?

그 사건에 대해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는건, 한국에서 벌어진 범죄는 아니고 (혹시라도 이 글 보는 한국경찰들 여기 신경쓰느라 헛수고 하지 말라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또한 경찰이 범인의 범행 동기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용의자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알았습니다. 동기를 파악했다면 제가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오를일은 전혀 없거든요. 동기를 모르니 주변인물들을 아무나 용의자로 취급하는 겁니다. (이것은 제가 이만큼이나 그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을때 받는 그 고통을 여러분들은 절대 모릅니다. 저만 용의자로 몰릴까요? 아닙니다. 용의자의 주변인물들 까지 용의자로 몰립니다.
즉, 일차적으로  피해자의 가족들이 용의자로 몰리고 그 다음 피해자의 가족외 다른 주변인물들이 용의자로 몰리고, 그 다음은 그 주변인물들의 주변인물들이 용의자로 몰립니다. 물론 한도 끝도 없이 이 범위가 늘어날 수 있겠지만, 어느 선까지 선을 긋고 수사를 하겠죠.

본론으로 들어가서 다들 아시다 시피,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용의자가 재판을 거쳐 범인으로 확정받기 전까지는 무죄인것으로 봐야 한다는 거죠.

제가 용의자 얼굴 공개를 주도하는 조중동에게 묻고 싶은건,

재판후 범인으로 확/정 받/은/뒤/ 얼굴을 공개해도 될것을 아직도 법/적/으/로 범/인/이 아/닌/ 용의자의 얼굴을 공개해야 할 이유가 뭐냐 하는 것 입니다.

즉 왜 무리하게 얼굴 공개의 시점을 법 원칙을 어겨 가면서 이렇게 앞당겨야 하냐는 말이죠.

이게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를 하실려면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범인을 잡는것 보다 더 중요한건, 무고한 시민이 범죄자로 몰려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 입니다.

즉 우리 사회가
1. 범인을 잡는다
2. 무고한 시민이 범인으로 몰리는것을 방지해야 한다.

는 두가지 명제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2번을 선택해야 한다는 겁니다.

비록 진범은 놓치더라고, 수사과정에서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거죠.

수사는 경찰이 하고,
기소는 검찰이 하고,
재판은 사법부가 합니다.

왜 이 세가지의 독립된 기관이 존재하는건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세가지 기관중 어느 하나라도 부패한곳이 있다면 옳바른 법 집행이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세가지 기관이 각기 권력을 가지고 서로를 견제 함으로써, 공정한 법 적용이 이루어지도록 하는것 아닌가요?

이해를 돕기위해,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아주 심한 비약을 해보겠습니다.

지금 이 사건, 경찰이 조작하는거라면요?
어느 미친 경찰이 다 죽여놓고, 무고한 시민 잡아서 범인으로 몰아가는 거라면?

용의자가 자백했다고 경찰이 발표했지만, 정말 용의자가 그런 자백을 했는지,  아니면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은건지 막말로 경찰하고 범인밖에는 모르지 않습니까?

물증들? 경찰들이 다 조작한거라면? 자백? 자신이 범인이 아닌대 개인적인 이유로 스스로 범인이라고 자처하고 나서는 건 아닌지?

사회가 경찰말만 100% 믿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경찰이, 검찰이, 사법부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부패하는 모습을 지금도 보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2MB 정부가 몸으로 보여주고 있죠...

제 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의 발표를 무작정 못 믿겠다는것이 아니라, 경찰일지라도 항상 진실을 말하지 않을 가능성은 항시 존재한다는 겁니다. 또한 용의자가 실제로 자백한 내용이라도 그걸 100%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법부가 최종 결정을 하는거겠죠. 재판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말입니다.
사법부도 믿을 수 없으니, 항소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있고, 대법원까지 올라가며 몇번 재판을 받을 기회가 용의자에게 주어지는거죠.

사 회가 범죄를 행한자 의 처리에 대해 이렇게 복잡한, (조심스럽기 위해 복잡해진) 과정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무고한 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범인은 놓치더라도, 무고한 자가 범인으로 몰려 피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말이죠.

용의자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 처럼, 범죄를 저지른게 어느정도 확실한 인물이 아닙니다.
용의자란 (특히 살인사건의 용의자) 피해자의 모든 주변인물이 용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부모님이 의문의 살해를 당했다. 그러면 자식인 여러분들이 바로 용의자가 됩니다. 이게 용의자 입니다.
즉 여러분 누구라도 갑자기 용의자가 되는것은 아주 간단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수사를 하는 경찰이 필요에 따라 그냥 용의자라고 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의자로 취급 받기 위해 필요한 어떤 규정따위 이런거 없습니다.

용의자와 재판에 의해 확정된 범인의 차이는 어마 어마 하게 큰 것입니다.
그런대 지금 이사건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 이 용의자와 범인의 차이에 대해 제대로 이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범인의 얼굴 공개는 찬성합니다. 단 재판을 통해 범인으로 확정된 다음에 말이죠.
다시 말해, 범인이 아닌 용의자의 얼굴 공개는 반대한다는 겁니다.

조중동은 범인이 아닌 용의자의 얼굴을 공개해 놓고 자화자찬 중입니다만. 저는 막말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넘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얘네들은.

재판을 통해 범인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인것으로 추정한다는게 법의 원칙이고,
이를 어기고 조중동이 자의적으로 용의자의 얼굴을 지금 이 시점에서 공개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스스로 사법부 행사할 권력을 대행 하겠다는 겁니다. 욕심이 너무 과하네요.

범인인지 아닌지는 사법부가 판단하는거지 일개 신문사가 하는게 아닙니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이런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정녕 신문사들은 재판에 관한 권한까지 가지겠다는 겁니까? 우리나라 법원 이제 문 닫아도 되겠네요. 판사들의 대량 실직 사태를 예상해도 될까요?

이건 엄연한 사법권력에 대한 언론의 도전입니다. 조중동의 이런 도전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입을 다물고 있다는게 신기하다기 보다는 글쎄요.. 쉽게 이해가 되네요.. 떡찰도 존재하는 세상에 이 정도야 뭐...

전 세가지를 조중동에게 묻고 싶습니다.

첫째는 재판후 범인으로 확정되지도 않은 아직 법적으로 용의자에 불과한 시점에 얼굴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는? 더 쉽게 말해, 왜 재판후 얼굴공개 시점을  범인으로 확정될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런 식으로 모든 용의자들의 얼굴을 공개해놓고, 나중에 그 용의자들중 누군가가 무죄 인게 밝혀지면, 조중동은 어떤 보상을 할 생각인지 묻고 싶습니다.

세째는, 과연 이번 행위의 의도가, 공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왜곡된 국민 여론에 편승해서 그동안 추락한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를 높여보기 위한 꼼수가 아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법부에 묻고 싶습니다.

정말 사법권력을 언론사에 넘겨 줄 생각 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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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댓글이 많이 달릴거라고는 예상을 못했네요.
몇가지 첨가 하겠습니다.

1. 피의자와 용의자라는 말이 나오는대, 그 차이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법 어디에도 피의자 신분이면 유죄추정하고 얼굴공개해도 되고 용의자면 안된다는 말 없습니다.
단지 재판에서 최종판결 받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한다는 것 만 있죠.
피의자나 용의자나 그 차이점들은 여기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재판에서 결정난 범인이냐 아니냐가 중요한거죠. 즉 피의자가 범인의 동의어는 아니란 말입니다.

2. 용의자가 자백한대로 시체가 발굴됬으니 범인이 확실하다는 분.
진 범은 따로 있고 강호순은 시체 유기하는것만 도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강호순은 어떠한 알 수 없는 이유로 진범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범인이라 나서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 정황상 이 가설이 맞을 확률은 0 에 가깝지만 전혀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가설이 맞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건 판사의 몫이지 저나 님같은 일반인에게 주어진 권한이 아닙니다.

3. 이런 저런 이유로 범인이 확실하니 지금 공개해도 상관없다는 분.
님이나, 저나, 이 세상 누구던간에 강호순에 대해 범인이라고 확신할 수는 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상상의 자유" 이지 법적 효력은 없다는것을 아셔야 합니다.
누가 범인이고 아니고를 결정하는 것은 그 권한을 부여받은 주체에 의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 권한을 법원이라는 한 곳에만 주었습니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런 사건 있을때마다 국민투표를 할까요? 누구는 범인 확실하다 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4. 왜 조중동이 보상을 해야 하냐는 분.
그말 하신 님이 만에 하나 용의자 신분으로 얼굴 공개의 피해를 당하고도 조중동이 그들 특유의 "아니면 말고" 신공으로 대항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실건가요?

5. 제게 처신 똑바로 하라고 하신분.
용의자가 되는건 본인이 평소 처신을 제대로 했던 안했던 그런것과는 상관 없다는것을 아셔야 합니다.

6. 조중동이 며칠 얼굴공개 하면서 설치더니 금방 조용해 졌습니다. 사법부가 넌지시 경고/불쾌감이라도 표시한걸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뒤늦게나마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걸 뒤늦게 깨닫고 역효과라도 나올까봐 슬쩍 발을 빼는걸까요? 제가 보기엔 두개 다 일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