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808227&RIGHT_DEBATE=R8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지경이 되면,
이제 그 사회나 국가는 두 갈래 갈림길에서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는 ‘원칙’으로 ‘변칙’을 시정해서 정상적인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또 하나는 더욱 큰 변칙을 동원함으로써 그 동안의 ‘변칙’들에게 상을 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막장 사회로 치닫는 것입니다.
경제학 개념으로 말하면 하나는 공황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가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두 갈래 길 중에서 공황을 받아들이는 길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 동안 여러 편의 글을 써왔는데,
시종일관 해온 얘기 중에 하나는 지금은 통상(通常)이 아니라 비상(非常) 시기이므로 ‘통념(通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통념의 철옹성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꿈쩍도 안하는 철옹성을 마주하고 좌절감을 느끼게도 됩니다.
철옹성과도 같은 통념 중 하나는 ‘돈’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돈은 윤전기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신용창조(=대출)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신용(통화)인데, 미국에서 이 신용(통화)는 지금 수축하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이 이미 진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윤전기에서 돈을 찍어내고 있다’, 그러니 미국 달러의 가치가 휴지가 되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다, 라는 이 강력한 통념은 다른 모든 설명을 비웃으며 꿈쩍도 않는 듯 합니다.
또 하나의 막강한 통념은 미국이 ‘공황’으로 가는 것을 방치할 리가 없다, 는 것입니다.
30년대와 달리 지금은 경제학 지식이 발달했기 때문에 공황을 막아낼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절정에 달했던 2006년말 상황에서 공황만 없으면 미국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 당시 미국의 부동산 버블을 다루는 TV프로에서 ‘캘리포니아 메뚜기떼’를 소개하는 장면을 인상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메뚜기떼란 캘리포니아 지역의 부동산투자자들의 모임인데, 이들이 미국 각지를 휩쓸고 다니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부동산을 매집하고 가격을 폭등시킨다고 해서 붙게 된 이름입니다.
TV에서는 그 모임의 성대한 연말 파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두 호기롭고 자신만만하더군요.
그 모임에 속한 한 부부(예전에는 정상적인 직장인들이었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부인이 얘기하기를,
“평생을 살아온 중에 요즘의 부동산 투자활동보다 더 짜릿하고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 고 하더군요.
돈 놓고 돈 먹기 판에서 돈을 따고 있으니 짜릿짜릿할 것입니다.
그 부부는 이제 직장생활 같은 건 눈에 안 들어올 것입니다. 고작 푼돈을 벌고자 직장에 매여 상사의 눈치나 보고 하는 사람들이 좀스럽고 바보같아 보일 것입니다.
2006년말의 미국이 공황만 없으면 아무 문제 없는 것일까요?
2006년말의 대한민국이 공황만 없으면 아무 문제 없는 것일까요?
처음에 ‘비정상’이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여겨집니다.
이제 일부 사람들은 그 ‘비정상’을 ‘능력’이라 부르며 부러워하게 됩니다.
‘비정상’은 점점 오만해지고 이제 대놓고 ‘정상’을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정상’이 ‘무능력’이라 불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지난 글,
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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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TV에서 제주도의 ‘올레길’을 소개하는 프로를 우연히 봤습니다. 알게 모르게 벌써 많은 올레꾼들(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더군요)이 제주도의 올레길을 무작정 걷기 위해 찾고 있더군요. 길이 참 걷기 좋아 보이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도 더불어 걷기에 좋아 보여서 나중에 저도 한 번 걸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프로에서 올레길을 걷는 한 젊은이를 인터뷰한 대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비정규직이더군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도 돈은 안 모이고, 미래의 어떤 희망도 보기가 힘든 듯 했습니다.
그 젊은이가 하는 말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는 것은 자부할 수 있는데, 주변에서는 자기를 보고 그런답니다, 열심히만 살면 뭐하냐, 잘 살아야지...
그 젊은이는 요즘에는 스스로 회의가 든다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살아온 것인가, 열심히만 살면 안되고 잘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 젊은이를 보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자기 스스로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에 대해 회의해야 할 때 사람은 가장 힘들어집니다.
올레길을 걷고 싶어 찾아온 그 젊은이에게 얘기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니다, 세상이 광기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이제 바로 잡힐 것이다.
올바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조롱당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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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땀흘려 일해서 버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며 사는 것은 ‘무능력’인가...
집은 땀흘려 일해서 번 돈을 열심히 저축해서, 차곡차곡 모아서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무능력’한 가장인가...
그런 사회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까?
비정상을 부러워하고 동경하게 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뒤늦게 그 ‘능력’있는 모습을 따라잡기위한 노력에 나서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0억 만들기’ 열풍이 불었고, 동시에 젊은이들 사이에 ‘짠돌이 까페’가 대유행이었습니다. 짠돌이 까페도 TV에서 봤는데, ‘초인적인’ 절약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다음 까페입니다. 점심을 사발면으로 떼우는데 옆 사무실에서 뜨거운 물을 빌려서 해결하던 젊은이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10억’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정상적으로 일해서 번 돈으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니, 최대한 무리하게 담보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사놓고, 그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비정상적일 만큼 소비를 줄여서 짠돌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자산효과 때문에 소비가 늘어나서 내수가 호황을 보이게 됩니다. 부동산에 대한 투기가 생겨나도 그 정도가 아직 그나마 정상의 영역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에 머무르고 있으면 이렇게 됩니다. 2006년말 미국의 과소비가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데도 자산효과가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부동산 투기가 이미 정상의 영역을 한참 벗어난 지경까지 이르러버렸기 때문입니다.
10억을 만들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소비를 줄여버린 짠돌이들로 가득찼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수록 더욱 담보대출을 늘리고 그 이자비용 부담이 더욱 커지니 소비가 늘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경제학적으로 정상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가 문제없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이런 사회가 문제없이 계속 경제가 성장할 수 있을까요?
기업도 그렇습니다.
일전에 GM대우의 닉 라일리 회장은, 대우자동차의 내수판매를 도저히 ‘대우자동차판매’ 주식회사에 계속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우자동차판매’ 주식회사가 대우자동차의 판매에는 관심이 없고, 아파트를 건설하고 판매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포스코라는 제철회사에 왜 아파트를 건설하는 건설회사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왜 아파트를 건설하는 건설회사를 새로 만드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이런 나라의 경제에 경쟁력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다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황만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현대 경제가 기반하고 있는 신용(통화) 시스템은 그 태생(역사적)을 보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제도로서 발달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용(통화) 시스템의 원칙을 지킨다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진행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신용(통화) 시스템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지금 미국이 공황을 피해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신용(통화) 시스템의 원칙을 어긴다는 것은 범죄행위입니다.
미국은 지금 공황을 받아들이는 길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공황’으로 갈 리가 없다, 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통념 말고, 어떤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객관적인 사실은 반대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가장 공황을 많이 겪었던 나라는 영국입니다. 공황을 겪고 나서 영국은 당대 최고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가장 공황을 많이 겪었던 나라는 미국입니다. 역시 공황을 겪고 나서 미국은 당대 최고 강대국 자리를 영국으로부터 이어받았습니다.
공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최고 강대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반면 양자 택일의 갈림길에서 하이퍼 인플레를 선택한 프랑스와 독일은 최고 강대국 자리를 두고 벌인 경쟁에서 졌습니다.
그 외에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중남미 각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선택 때문에 중남미 각국은 선진국이 되지 못했습니다. 원래 아르헨티나가 누구나 당연시하던 가장 유력한 선진국 후보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국가가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공황을 받아들인 나라들과 공황을 피하기 위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선택한 나라들은 이렇게 갈립니다.
공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선진국이 되고 강대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원칙’으로 ‘변칙’을 시정했기 때문에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변칙’이 계속해서 상을 받는 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본도 1990년 이래 공황(=디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양자 택일의 갈림길에서 하이퍼 인플레를 선택했다면 공황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신용(통화) 시스템의 원칙을 지켰고 공황으로 가는 길을 받아들였습니다.
일본은 여러 모로 의심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선진국인 것입니다. 1990년에 하이퍼 인플레의 길을 택했다면 중남미형 국가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미국이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자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할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일각에서는 하이퍼 인플레 얘기가 들려옵니다. 정말 중국이 하이퍼 인플레를 선택하는 길로 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 중남미처럼 극도의 양극화 사회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처럼 국가의 힘을 잃게 되고 세계 패권국가 경쟁에서 탈락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어떤 선택을 할까?
08년 터져나온 경제위기 이래 하이퍼 인플레 얘기가 자꾸 들려옵니다.
혹 하이퍼 인플레 쪽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세력들의 바램이 섞여있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요?
하이퍼 인플레로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가면 누가 이익을 보는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를 보면 중산층이 모두 몰락하고 국민 대다수가 굶주릴 정도로 가난해진 상태에서 국가의 모든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기업들 간에도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이 벌어집니다. 보다 더 큰 탐욕을 부린 기업, 부채를 동원한 무리한 확장을 계속 한 기업이 다른 기업들을 흡수하게 됩니다. 그 결과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혼자서 독일 전체 모든 국부의 1/4을 차지했던 휴고 슈티네스 같은 인물이 탄생하게 됩니다.
하이퍼 인플레가 진행되면 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장만한 한국의 중산층이 견뎌낼 수 있을까? 치솟는 이자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파트를 내놓게 되리라고 봅니다. 상황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불황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 공황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은, 탐욕을 부린 주체들이 계속 승승장구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들의 탐욕이 계속 상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이 이렇게 진행이 될 것인가?
제주도의 올레길에서 마주친 그 젊은이는 인상도 참 선해보였습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에 대해 회의해야 할 때 가장 힘들어집니다.
올바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조롱당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도 이제 원칙에 의해 변칙이 바로잡힐 시기가 도래했다고 봅니다.
선량한 사람들은 목소리가 낮은 법입니다.
반면 투자에 레버리지를 쓰는 사람들은 목청에도 레버리지를 써서 그런지 소란스럽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레버리지를 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좀 더 크게 들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법입니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떻게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않고 참고 또 참고 기다립니다.
하지만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에 대해 스스로 회의해야 할 때,
비정상에게 조롱을 당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 때,
이들은 이제 지치게 됩니다.
그리고 희망을 완전히 접게 되면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원래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던 사람들이 화를 내면 더 무섭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정치인들도 이들 다수의 사람들, 그 동안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다수의 사람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무서운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뒤에는 독재자가 출현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나폴레옹이 등장해서 혼란을 수습했고, 독일은 히틀러의 나치즘이 등장했습니다.
1차 대전 후 러시아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공산주의를 불러들였고, 중남미 각국에서는 군사정권을 불러들였습니다. 칠레의 아옌데 민주정부를 무너뜨린 군사정권의 성립도 하이퍼 인플레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사태는 바로잡혀야 합니다.
‘원칙’으로 ‘변칙’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황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도저히 바로 잡히지 않으면 안될 때가 돼서 공황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사회나 국가가 이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 방법은 법으로 정해진 신용(통화) 시스템의 원칙을 기어이 어기는 것, 그 행위는 범죄행위임에도 이를 기어이 저지르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회를 지탱해온 다수의 사람들,
올바른 가치기준을 믿고 살아온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에 스스로 회의해야 하는 지경에 내몰리고,
비정상에게 조롱을 당하는 지경에 내몰려서 희망을 접고 화를 내던 사람들,
이들은 이제 완전히 절망하게 되고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독재자를 받아들입니다.
독재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초래된 혼란을 바로잡지만, 민주주의를 용납하지는 못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2009년을 사는 한국인들은 ‘역사’를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나중에 역사가 지금의 선택을 돌아볼 것입니다.
나중에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선택하는 길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동안 써온 글에서 ‘이치’를 많이 강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저의 글에 대해서 이상론에 불과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원칙대로, 이치대로 돌아가는 것 봤냐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세상을 잘못 봐오신 것 아닌가 합니다.
언뜻 보면 이 세상이 원칙대로, 이치대로 잘 안 돌아가는 것 같지만, 잘 보시면 그래도 원칙대로, 이치대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상주의에 입각해서만 글을 쓰고 있다고 보신 분들은 잘못 보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 냉혹한 진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인간사회가 이치대로, 하늘의 섭리대로 지금까지 흘러왔고 앞으로도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치와 하늘의 섭리가 인간의 탐욕, 어떤 때는 악한 동기 마저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뜻을 구현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아닌가 되묻고 싶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래 그래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그래프는 제목 그대로 우리나라의 비금융부문 부채 중 각 경제주체가 얼마 만큼의 부채를 지고 있는지 그 비율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프를 보면 10년 전과 지금 기업과 가계의 입장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가게 되면 10년 전에 비해 기업(=자본)들은 매우 불리해진 상태입니다.
반면 개인들은 매우 유리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내의 자본들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저는 봅니다.
100% 확실한가?
누가 장당하겠습니까?
다만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가 진행되어 온 모습을 보면, 이런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으로 가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자본이 불리해지고 개인들이 유리해진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으로 간 적은 없었습니다. 자본주의 역사의 진행은 항상 자본의 의도가 반영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한국의 기업들은 디플레이션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 세월이 한국의 자본들로 하여금 디플레이션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의 자본들이 10년 전과 같은 상태였다면 인플레이션을 원했을 지도 모릅니다.
전세계적인 대공황이 진행되고 나면 한국의 기업들이 서바이벌 게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환율이 뛰어주기라도 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위 그래프에 나타나는 개인들입니다.
앞으로 디플레이션이 닥치게 되면 10년 전에 비해 지금의 개인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말았고, 이런 지경은 바로 잡힐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상황이 도저히 바로 잡히지 않으면 안될 때가 돼서 공황이 닥치는 것입니다.
이제 원칙이 변칙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휩쓸어온 광기를 바로잡을 것입니다.
돈은 땀흘려 일해서 버는 세상,
집은 땀흘려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사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올바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존중받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이상론인가?
자본의 탐욕이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본다는 점에서는 이상론보다는 냉혹한 현실론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치, 섭리는 자본의 탐욕마저도 이용해서 구현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제는,
광기가 바로 잡히고 살만한 세상이 올 때까지 그 과정은 너무 길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 과정 동안 많은 보통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피눈물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올레길의 젊은이에게 꼭 견뎌내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든 견뎌내기만 하면 올바른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회의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다만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는 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니 마음 다부지게 먹고 견뎌내라고...
위에서 소개한 그래프에서 지난 10년동안 개인의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저 그래프에 올라탄 개인들이 모두가 ‘탐욕’을 부린 것은 아닙니다.
‘무능력’한 가장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필사적으로 노력한 보통사람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마음 다부지게 먹고 어떻게든 살아남으셔야 한다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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